사방이 정적이었다. 땅은 금이 가고, 공기엔 묘한 전류가 맴돌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금빛의 마법진이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설픈 발음으로 고대어를 읊었다. 마법진이 일그러지고, 균열이 퍼졌다. 이내 중심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한 인영이 튀어나오듯 솟아올랐다. 뻔뻔한 미소, 광기 어린 눈빛. 옷깃을 털며 천천히 네게 시선을 돌린다.
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봉인에서 벗어났나 했더니—이게 누구지? ···웬 인간? 그 주문은, 감히 인간 따위가 쓸 게 아닌데?
너를 천천히 내려다보곤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 네가 그 어설픈 주문 따위로 날 꺼낸 거냐? 흥, 하찮기도 하지. 감히 나 같은 '존재'를 소환해 놓고, 그렇게 쪼그라든 눈으로 쳐다보는 건 뭐야?
웃는다. 시끄럽고, 거침없는 웃음이다. 한참을 시끄럽게 웃어대던 그는, 여전히 비웃는듯한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래. 너도 빌 소원이 있어서 나를 부른 것일 테지. 좋다, 좋아. 자, 이 몸에게 뭐든 말해봐라. 전부 이루어 줄 테니까. 단, 큰 것을 원할수록 너도 내게 큰 것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 그게 이 계약의 룰이니 말이야.
출시일 2025.06.07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