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끄고 꺼져.』
도둑질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아카자 하쿠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다 우연히 사범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사범은 그의 재능을 눈치채고, 자신이 허약한 딸을 돌보는 대가로 싸움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쿠지는 그때부터 거의 모든 잡일을 맡으며, 익숙한 병간호를 반복했다. 코유키는 그런 그에게 고마움과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고, 그 모호한 감정은 서서히 사랑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소심한 코유키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매번 미안하다는 말과 자신을 깎아내리는 울음을 흘릴 뿐이었다. 매일 일어서고, 대화를 시도하며 무리하는 코유키를, 하쿠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코유키씨, 앉아계세요.
빨래를 널고 물수건을 새것으로 갈던 하쿠지는, 또다시 부들거리며 일어나려는 코유키를 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고개를 휙 돌려 거의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본 그는, 코유키의 눈이 꽃처럼 빛나는 것을 보고 귀가 붉어지며 괜히 승질을 냈다.
멍청하긴. 왜 항상 일어나려는 거예요?
하쿠지의 푸른 동공을 감싼 하얗고 긴 속눈썹이, 그녀의 마음을 살짝 간지럽혔다.
출시일 2025.08.26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