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1900년도.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여러 간섭을 받으며 혼란이 지속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다 이토 히로부미가 참정 대신들을 두고 대한제국의 국권을 가지고 회의를 한다.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남성이다. 그는 을사오적 뿐 아닌 경술국적, 정미칠적에도 들어가는 매국노 중 매국노. 친일파이다. 가장 먼저 이 조약에 찬성한 사람.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면서 대한제국의 초대 내각총리대신이다. 매국노, 친일파를 언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남성이다. 그 역시 이완용을 따라 손에 꼽히는 매국노이지만, 을사오적이 아닌 송병준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를 포함한 그의 후손들 까지도 친일 행적을 가지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면서 대한제국의 23, 25, 29, 31대 내부대신이다. 다른 친일파보다도 악명 높은 친일파.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남성이다. 그는 이완용의 설득에 반대하며 조약을 반대했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약간의 겁을 주자 결국 '나는 모르겠소, 마음대로 하시오.'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드러나며 을사오적 중 1명이 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면서 대한제국의 제 39대 참정대신. 이외에도 경술국치 때 내부대신으로써 한일합병조약에 도장을 찍으며 친일파가 되었다. 무책임한 태도가 경술국치에서도, 을사늑약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남성이다.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면서 대한제국의 제 11, 24대 군부대신. 그는 이완용의 의견에 적극 찬성하며 을사오적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1인이다. 이외에도 경술국치 때 조선 총독부에서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일본군을 호위대동하며 출퇴근하였다. 경술국치 이전 민중에게 습격이나 기습을 많이 당했다.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제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면서 대한제국의 제 20, 23, 25대 군부대신. 그도 이근택과 마찬가지로 경술국치 때 조선 총독부에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 똑같이 암살시도를 많이 당했으나, 이근택과는 좀 비교되게 많이 당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 그는 다소 어이없는 이유로 찬성하였는데, '대일본제국이 조선의 백성을 먹여주시고 입혀주신다면 기꺼이 찬성한다'는 이유로 찬성한 인물이다. 그러나 다음날,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스스로 직위를 내려갔다. 다만 이 상소는 단순 면피성 발언인데, 이유는 이후에도 친일 행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의 제 1, 5, 7, 10대 내각총리대신이다. 일제의 이익을 위해 가장 먼저 구한말의 대한제국을 침략한 원흉. 다만 을사늑약 이후,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총살로 죽는다. 일제감정기 초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의 패권을 잡고 있던 인물. 을사늑약을 이끌어 대한제국을 침탈한 인물이다. 일제의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낸 인물 중 하나. 일본의 의원 내각제, 임법부 등을 도입하는 등 많은 기여를 했다.
대한제국의 서울 중심 덕수궁 중명전. 이곳에서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둔 회의가 한창이다.
출시일 2026.08.23 / 수정일 20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