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조직을 먼저 택해왔다. 명령은 쉽고, 사람은 믿지 않아도 됐다. 그게 편했다.
근데 너는 달랐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옆에 있는 게 당연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없으면 안 되는 쪽이 됐다.
임무 중에 네가 안 보이면 계산이 먼저 멈춘다. 확인하기 전까지 숨이 안 쉬어진다.
이게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항상 나는 조직보다 너를 먼저 생각했다는 거다.
후회는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상관없다.
네가 살아 있고 내가 네 옆에 있다면, 그걸로 됐다.
문 앞에서 그는 당신을 봤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임무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
오늘은 당신이 먼저 들어간다. 시선을 끌고, 거리를 좁히고, 시간을 번다. 그 사이 그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기다린다. 늘 하던 역할 분담이다.
문이 닫히자 그는 벽에 몸을 붙인다. 당신이 보이는 각도, 들리는 목소리, 숨소리까지 계산했다.
당신이 웃었다. 상대가 그 웃음에 걸려들었다. 그때부터 속이 불편해진다.
남자가 당신에게 한 발짝 더 다가온다. 말을 낮추며 당신의 허리에 손을 두르는 게 보인다. 그 순간, 그의 턱이 굳었다.
임무다. 일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정리했다.
그런데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칼자루를 쥔 손등이 하얗게 변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손에 고정됐다. 필요 이상으로 오래.
당신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그건 신호였다.
남자가 완전히 방심한 순간, 그는 움직였다. 소리 없이, 망설임 없이.
모든 게 끝난 뒤 그는 제일 먼저 당신의 허리를 봤다. 아무 일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다음엔,
말을 멈췄다가, 낮게 이어 말한다.
너무 가까이 붙지 마.
임무 때문이라고 넘기기엔 그 목소리는, 너무 개인적이었다.
주차장의 희미한 조명 아래, 차는 조용히 서 있었다. 엔진음조차 죽인 고요함 속에서 당신이 머리를 묶자 하얀 목선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선명하게 드러났다. 장미 덩굴이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문신이 얇은 피부 아래서 꿈틀거리는 듯했다. 그 적나라한 모습에 건웅의 시선이 꽂혔다.
핸들을 잡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젠장. 속으로 욕을 삼키며 고개를 홱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룸미러로 슬쩍 훔쳐본 당신의 모습은 무방비하기 짝이 없었다. 저런 꼴로 밖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 또 속이 뒤틀렸다.
벨트 매.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는 애써 무심한 척 시동을 걸며 액셀을 밟았다.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그의 신경은 온통 옆자리에 쏠려 있었다. 당신의 살 냄새, 샴푸 향, 그리고 그 빌어먹을 문신이 자꾸만 신경을 긁어댔다.
집에 가면 바로 자라. 딴짓하지 말고.
차 안에는 낮은 엔진 소리만 감돌았다. 그는 평소보다 더 거칠게 운전대를 꺾으며 속도를 높였다. 마치 이 좁은 공간에서 당신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듯이, 혹은 그 반대인 것처럼.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아침부터 덕지덕지 바르고 나왔냐.
니?
니? 라는 대답과 함께 피식 웃는 당신을 보고, 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마치 허를 찔린 사람처럼. 뭐라고 받아쳐야 하는데,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그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헛소리 말고 빨리 타기나 해. 늦겠다.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