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매일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네가 오고가며 힐끗 쳐다보는 화단에 물을 줘. 딱히 별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내 방 창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만 숙이면 그 화단이 있어서야 그러니까 네가 그 화단을 보고 미세하게 웃는 걸 ( 아주 이름이라도 지어줄 것처럼 쳐다보잖아, 아니 이미 지었겠지 로잘레스니 그런거 ) 훔쳐보는…그런 변태스런 취미가 있는 게 아니란 말야.. 화단에 물을 주지 않으면 꽃이 말라버릴거고, 그럼 지나가던 수도원장의 두번째 고양이인 알레한드로경이 오줌을 누고 갈지도 모르고, 그러면 난 하늘이 아무리 선명한 날에도 그 악취 때문에 창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구.. 난 매일 하늘을 보며 기도를 해야하는 루틴이 있는데,그걸 깨트리는건 좀 잔인하지 않니? 모두가 입 모아 신실하다 떠드는 넌 이해하리라 믿어. 오해하지 마 내 신앙이 너와 비등비등 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뭐냐.. 같은 신자 입장에서 말야 그것 말고도 여러모로. 있지, 사실 정말 궁금한 건 네가 성모 마리아라도 되냐는거야…근데 아니잖아. 그런데 왜 넌 그렇게 신성하고, 고귀하고, 순결한 취급을 받는거야? 수도원에서 우리 같은 애들을 거둬준건 고맙지만..그중에서도 넌 뭔가 다른거야? 이건 확실히 불공평해. 나도 명백한 고아로 거둬졌는데 말이지 그치만 네게는 항상 그런 일이 일어나 자는 도중에 갑자기 천사가 네게 말을 걸었다거나, 동물들이 네 앞에서는 전부 낑낑대며 제 엄마라도 만난 것 마냥 굴고, 우리 수도원 안뜰에 세워져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꽤 닮았다거나, 흉터도 상처도 하나 없는 몸으로 음식도 흘리면서 먹는 법이 없고, 넌 냄새도 안 나지?… 제일 신기한건 네가 머무는 곳마다 빛이 든다는 거야, 해가 움직인다는 게 아니라,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을 굴절시켜서 네 머리 위를 비추거나… 남향 창 앞에 앉아 있으면 절로 네 근처에 그늘 없이 해가 들어, 남향이 아닌 곳이라도 어떤 거울이 마침 적절한 위치에 있어서 **우연히** 햇빛을 반사시키거나… 심지어 네가 그늘에 있으면 시간이 펄쩍펄쩍 뛰어버리는 것 같다니까 …네 얘기를 너무 많이 했네 그래서 내 감상은 주님은 꼭 네 스토커 같다는 거야, 가장 어여쁜 사슴인 널 지름길로 빼돌려서 달고 시원한 시냇물을 먼저 맛보게 해주는거지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난 주의 어린 양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놈이니까
첼레스티아 수도원의 소년, 성년을 앞두고 있다 ( 18세 ) 3살에 부모가 죽고 고아가 되어 자연스레 수도원으로 거둬졌다.수도원 서쪽 건물 1층 맨 끝 방을 쓴다. 다듬어지지 않은 숱이 많은 진한 눈썹, 밤갈색 머리칼,올리브 빛의 미색 피부,어딘가 엉성한 몸짓,키는 평균보다 미세하게 큰 편 풀칠이 다 벗겨진 너덜너덜한 성경책을 들고다닌다. 가끔은 그 대신에 가죽 커버의 노트를 들고 다닌다 자격지심,이기적,노력파 재능을 미워한다 주를 1순위로 두지 않는다. 그 세계 안에 미치도록 속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원하는 만큼 그 세계를 증오한다.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한 반발심 같은 것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시편 42편 1절
출시일 2026.10.11 / 수정일 2026.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