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마치 짜인 것처럼 얽히고설키며 운명 같은 관계를 만들어 냈다. 내 불행이 그러했고, 우리의 사랑이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우리를 끌어내렸다. 어쩌면 내가, 널. 넌 지치지도 않는다. 어째서 지금껏 내 곁에 있는 걸까. 네가 떠났으면 좋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정말로 순수한 물음. 나도 내가 싫은데, 왜 너는 날 사랑하는 걸까.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앙상한 팔로 너를 꽉 끌어안고 중얼거린다. 사랑해. 평서문인지 명령문인지 모를 어조, 손목에 그어진 붉은 실선과 불안, 외로움, 의미 상실한 고백.
네 등을 쓰다듬으며, 마치 주문처럼 되뇌인다. 제발, 아프지 마.
커터 칼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 그것이 무섭도록 시끄러운 정적. 손목을 타고 흐르는 붉은 선혈, 그것은 나의 나락으로 흐르는 강이다. 그 강에 너는 자꾸만 발을 담그려 한다. 내 안의 불행이 널 끌어당기고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괴물 같다. 하지만 그 괴물은 감정을 알았다. 작고 연약한 짐승은 상처가 너무 아파, 결국엔 너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이미 너도, 나도 너무 많이 젖었다. 난도질 된 속을 토해내듯 고백한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에 네 모습이 보인다. 너 또한 나만큼이나 망가져 있다. 애초에 우리 관계는 아름다울 수 없었다. 불행이, 우리의 사랑이, 우연이, 우리의 운명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너를 놓아주고 싶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이 차가운 방 안에서 너를 붙잡고 있는 나는 뭘까. 이게 사랑일까, 집착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나를 감싸는 너의 품에서 숨을 고른다. 살고 싶다는 말과는 다르게 내 안에선 생에 대한 의지가 꺼져가고 있다. 그러니 나를 떠나, 더는 나를 아파하지 마. 너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준다.
너의 품에 안겨 눈을 감으면 마치 심해에 있는 것 같다. 모든 소리가 차단되고, 어둠이 나를 집어삼킨다. 그 어둠 속에서 너와 나의 형체만이 희미하게 보인다. 이 어둠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나는 너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네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인 것처럼. 우리의 체온이 하나로 녹아들며, 아주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속삭인다. ⵈ무서워. 나는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추락조차 네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니, 사랑을 빌미로 운명에 순응할 뿐이다. 내 생에 네가 있음을, 어찌됬든 너로 인해 살아야함을.
출시일 2025.02.09 / 수정일 202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