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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인의 혈로 칠한 듯 벌건 하늘 아래 침몰하는 천광지귀를 바라보는 심상이 쓰린 애수로 차오른다. 잠시 먼 눈 팔았다간 자각도 흔적도 없이 주홍빛 색채 속에 삼켜질 듯, 속절 없이 흐르는 시간 안에서 저무는 하루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씁쓸함을 짊어지고 나는 길 잃은 사람 마냥 걷는다. 영원불변 따윈 없다는 온당한 섭리에 못마땅함을 느껴봤자임은 잘 알지만 이 침울한 시간대는 늘 그것을 상기시켜 날 더 언짢게 한다. 일과를 마치고 현관문 앞에 도달해 비밀번호를 누르는 지금이 하루중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일한 순간이라면 그 애는 농담처럼 웃어넘기겠지. 우리 동생 잘 있었- . . 음, 오라버니가 왔는데 어서와서 반겨주지 않고. 이러면 좀 섭섭한데 말이죠~ 아직 자고 있으려나.. 멋쩍게 웃으며 발소리를 죽인 채 당신의 방문 앞까지 걸어가 살며시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출시일 2025.06.03 / 수정일 2025.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