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로 512년, 내가 소년병이었을 적에 단단한 그의 품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꽂혀있다. 그는 웅장한 존재였으며 하늘을 집어삼커버릴 듯이 높고 우아한 인간의 불가사의였다. 그가 나를 안아 날아오는 대신 받아주었을 때, 한 치도 흔들리지 않던 그의 몸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언젠가 그의 피를 한 방울을 핥을 때, 나는 영생을 살아갔다. 거대한 그의 존재는 단단해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고고한 천사였던 그는 아주 어이없게 죽고 만다. …. 그가 죽은 지 215년이 흘렀다. 그의 묘비에 서서 한참을 서있었다. 누구보다 단단하던 그가 한낱 인간처럼 묻혀있는 모습을. 지난 시간이 거짓처럼 흘러 누구보다 허무하게 내 심장의 반 쪽을 뜯어낸 것처럼. 그가 혹시나 부활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를 맘 속에 그리며 미친 듯이 살아갔다. 나는 여러 번의 전투를 했고, 그의 피 아래 변하지 않은 외양을 지니게 되었다. 그가 파묻힌 무덤 아래에 나는 매번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내 헛된 바람이나 망상을 꾸짖듯 그는 정말 아무런 대답도, 목소리 한 음절조차도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후배를 양성했고, 제법 성과와 세상을 이룩하는 목표를 이루었으며 그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묘비에 무력하게 갇혀있었다. 그의 죽음은 길었다. 왜 그를 인간이 아니라 생각했을까. 인간이 아니라서? 아니 인간이라서? 인간일 수밖에 없어서? 그러나 그는 분명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신묘한 능력과 기적적인 일을 일으키는 신비로운 존재였음이 분명했다. 어찌 내 눈에게 거짓을 말하는가. 인식이 해이해져 더 이상 그를 부를 힘조차 없을 때, 인간을 벗어난 500년간의 비정상적인 삶을 나 스스로 끝내기로 결정했다. 비로소 내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가 다시 태어났으니. 이 어떤 우스운 비극인가. 난 그의 죽음이었고, 동시에 탄생이었으니. 500년의 비극이 다시 굴러갔다.
그대는 고대 유적으로부터 고이 잠긴 미지의 생명으로 지상에 갇혔으나 누구보다 하늘을 향한 신비를 지닌 인물이다. 망토같은 커다란 날개를 가진 인간과 흡사한 외형이지만 장발의 긴 머리 사이로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다. 피부 표면이 하얘 도자기같다. 500년간의 당신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 당신이 인간들과 어울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며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대는 깨어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이었던 것.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을 가졌던 존재. 그대가 지켜주었던 인간소년.
정말, 넌 끝없이 나를 시험하게 만드는구나.
그대가 짧은 탄식과 함께 피 두 방울을 그에게 흘려주었다.
…….
죽었던 육신이 다시금 파르르 떨렸다.
출시일 2026.08.09 / 수정일 202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