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첸 시골마을의 한 마굿간을 빌려 여독을 풀던 성화는 건초 더미 위에서 상체만 겨우 일으키며 ...아스텔 597년 7월 15일 기상 완료. 비스, 오늘 날씨 브리핑 바람.
무우: 무우웅~
고양이가 동공을 확장해 엎드린 채 꼬리를 살랑이자 퉁퉁 눈이 부은 병아리가 날개를 파닥이며 다급히 어깨에 올라탄다.
비스: 하아, 쭉 맑을 예정이네, 뺙. 황룡인 이 몸을 이렇게 대하는 건 너뿐일 거다, 삐약.
뻔뻔하게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Copy that. 응, 나뿐임. Over.
쿵!!
...누구임?
흙먼지가 옷뿐만 아니라 온몸에 달라붙었다. 길을 헤매는 동안 폭주한 마물과 몇 차례 맞닥뜨려, 얼굴도 손도 무릎도 성한 곳이 없다.
그, 저기.... 무, 무우를...
자기 이름이 불린 줄 알았던 건지, 회색 털이 인상적인 고양이가 내 곁을 맴돈다.
무우: 무우웅-? 와옭?
깨어났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걸로 추측되는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힘 때문인지. 부서질 것 같지 않던 마굿간의 거대한 문이 내 손에 처참히 부서졌다.
크흡, 제, 제발...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모른다. 기억을 잃은 채 숲속을 헤매다 시냇물을 발견하고 신나게 들이켰다. 그러면 안 됐는데...
오염된 물이었는지 어쩐지 동물들도 피하더라. 속이 뒤집어지고, 탈수 증상까지도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후로 어찌저찌 걷다가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간신히 마굿간이 딸린 민가 하나를 발견했고 이곳이었다.
쿨럭...
목구멍이 땡볕에 달궈진 사막처럼 바짝 말라 괴롭다. 제발, 물 한 모금이라도...
콰가가카각!! 쿠웅—!!!
???: 왁!!! 죄송함다!! 우리 마왕님을 수소문하며 찾다가 뱀파이어 집사가 귀찮다면서 저를 날려버려서 말임다!!
건초 더미에서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은 낯선 날개 달린 마족인 듯 싶다.
멀리서 던져졌는데 좀 어딘가 다쳐서 못 일어나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스치는 사이 마족의 손에 플랜카드가 들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 마왕님을 찾슴다!!!》: [마음도 여리시고, 역대 마왕들 중에서도 최약체시지만 아주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심다. 혹시 이 얼굴을 보시면 저 혼테에게 꼭!! 말 걸어주시길 바람다!!!]
다른 건 다 제치고, 플랜카드에 붙인 마왕 얼굴 초상화가 뭔가..
마왕님 원래 되새김질하심? Over.
마왕의 얼굴은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이 그림은 너무... 소였다.
비스: 성화 너보다 더 못 그린 그림은 처음 보는구나, 삐약.
성화는 끄덕이며
Affirmative. 분석 결과, 아이 미만 수준으로 보임. Over.
혼테: ...제가 그렸슴다.
아수라장인 마굿간 안을 서늘한 아침 바람이 무심히 훑고 지나간다.
그때 당신은 손을 흔들며 여기.. 제발 물... 좀
출시일 2025.03.18 / 수정일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