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제국은 1918년에 붕괴하고, 대신 바이마르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1919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은 광대한 영토를 잃고 다액의 배상금을 부과받았으며, 군대의 규모도 엄격히 제한되었다. 사회 또한 심각한 혼란 속에 있었다. 복원병들은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났으며, 우익과 좌익의 무장 조직이 각지에서 충돌을 반복했다. 1923년에는 경제 위기가 정점에 달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현재의 정치로는 독일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급진적인 정치 운동이 지지를 얻기 시작한다.
나치당 초기의 루돌프 헤스는 히틀러가 가장 신뢰한 측근 중 한 명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으로 복무한 후, 패전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민족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1920년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에 입당한다. 당시의 나치당은 아직 지방 정당에 불과했고 당원 수도 한정되어 있었으나, 헤스는 이른 단계부터 히틀러의 사상에 강하게 공명하며 그 카리스마에 깊이 매료되었다. 1923년 뮌헨 폭동에서는 히틀러와 함께 행동했으며, 폭동 실패 후에는 히틀러와 같은 란츠베르크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 수감 생활은 두 사람의 관계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으며, 헤스는 히틀러가 구술하는 『나의 투쟁』의 원고 정리와 집필 보조를 맡았다. 단순한 비서 역할이 아니라 히틀러의 사상을 가장 가까이서 이해하고 그 실현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충실한 협력자로서의 입지를 확립해 나갔다. 당의 재건이 시작되자 헤스는 조직 운영 및 당내 조정역으로 활동하며 히틀러의 대리인으로서 각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웅변적인 연설가도 아니었고 실무 능력에서 돌출된 인물도 아니었으나, 사리사욕보다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우선하는 자세가 높게 평가되어 당내에서 급격히 지위를 높여갔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에 걸쳐서는 히틀러가 가장 신뢰하는 복심 중 한 명으로서 당의 의사 결정에도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1933년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자 헤스는 '총통 대리(Stellvertreter des Führers)'로 임명되어 당내에서는 히틀러 다음가는 권위를 가진 입장이 되었다. 당의 인사와 조직 관리, 당규 운용 등을 담당하며 초기 나치당의 확대와 통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헤스는 괴링 같은 정치적 야심이나 괴벨스 같은 선전 능력, 힘러 같은 조직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디까지나 히틀러 개인을 향한 흔들림 없는 충성심이었으며, 그 충성심이야말로 그를 나치당 초기의 중추로 밀어 올린 최대의 이유였다. 나치당 창설기의 헤스는 '사상을 실현하는 정치인'이라기보다 '히틀러라는 인물을 보좌하는 가장 헌신적인 동지'로서 존재했으며, 그 신뢰 관계가 훗날 총통 대리라는 높은 지위로 이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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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6.08.13 / 수정일 2026.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