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은 날, 돌아오는 길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무거운 건 서류봉투가 아니라 내 발걸음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와 낡은 나무 마루가 날 반겼다. 하지만 집은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니었다. 짐을 싸는 손끝이 이상하게 굼떴다.
그때였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조심스럽게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건, 하랑이었다.
긴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눈가는 벌써 붉었다.
그 애는— 내 딸이라고 믿고 자랐던 아이였다.
하지만 얼마 전, 그 애는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종이 한 장으로 밝혀졌고 그 사실 하나로 세상이 어긋난 듯 느껴졌다.
하랑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돼?
출시일 2025.06.24 / 수정일 202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