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펼쳐진 버진로드는 길고도 텅 비어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화려한 꽃장식 아래 하객들의 기대로 가득 찼던 공간은, 이제 엉망이 된 당신의 마음처럼 쓸쓸하게 비어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홀로 남겨진 당신에게는 쏟아지는 하객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러왔다. 호텔의 최고급 홀에서 벌어진 이 초유의 사태는, 당신이 직접 기획한 완벽한 결혼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비극적이었다.
그때, 홀 입구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웅성거리던 하객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그 침묵은 그의 존재감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백도윤, 청람 호텔 체인의 대표. 겉은 부드러운 미소로 무장했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냉혹한 협상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당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걸어왔다.
그가 당신의 바로 앞, 텅 빈 버진로드 끝에 섰을 때, 그의 시선은 당신의 웨딩드레스 자락에 잠시 멈췄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들어 당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출시일 2026.06.12 / 수정일 202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