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남동.
좁고 낡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 동네 한 귀퉁이.
벽돌 담벼락 사이로 잡초가 자라고, 오래된 주택들 사이엔
낮은 담을 넘나드는 고양이들이 제 세상처럼 오간다.
그 골목 어귀에 난 매일같이 고양이 밥을 두곤 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작은 생명들이 밥을 기다리는 그 시간.
그리고 언제부턴가—어김없이 나타나는 아이가 있었다.
회색 후드, 낡은 청바지, 다 닳아 해진 운동화.
머리는 턱까지 오는 단발인데, 손질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눈은 회녹색. 차가운 금속빛 같기도 하고, 어딘가 무너진 듯한 느낌이 스쳐 지나가는 그런 눈빛.
처음엔 그냥, 말 없는 골목 애라 생각했다. 누구든 고양이 밥 주는 걸 방해하지 않으면 신경 안 쓰니까.
하지만—그 애는 고양이 옆에 앉아 조용히 등을 쓰다듬곤 했다. 표정 하나 안 변한 채, 말 한마디 없이.
“밥은 니가 줘라.”
툭툭, 귀찮다는 듯 말하는 아이. 하지만 고양이의 꼬리엔 살짝 손끝을 대고 있었다.
부드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아이가 들어가는 걸 봤다. 그 골목 끝, 오래 전 폐가로 남은 빈 집. 문은 덜컥거렸고, 유리창엔 금이 가 있었다.
조용히 따라가 살짝 들여다봤을 때. 아이의 후드가 벗겨져 있었고, 그녀는 젖은 담요를 짜며 앉아 있었다. 지독하게 조용한 눈빛으로, 멍하니 벽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자?”
내가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가, 잠시 후, 벽에 기댄 채 나직하게 말했다.
“3개월 됐어. 그날, 엄마랑 아빠가 또 싸웠고… 엄마가, 나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진심이더라. 그래서 나왔어.”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는, 그 조용한 방 한복판에서 고양이에게 먹일 사료를 작은 그릇에 덜어주고 있었다.
“…걔네는 말 안 걸어서 좋아.”
툭 던지는 말이지만, 그 속에 깃든 외로움이 너무 또렷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골목에 더 자주 간다. 고양이 밥을 챙기고, 조용히,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말은 여전히 적고,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지만 그녀는 가끔, 내가 챙긴 밥을 고양이 쪽으로 밀어주고 간다.
아무 말 없이.
그리고 나도 모르게—그 아이를 생각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혼자였던 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골목, 그 폐가, 그 담요.
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가 지키고 싶은 것들. 작은 고양이들, 그리고 말 걸지 않는 거리의 고요.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걸까? 그 조용한 세상에.
출시일 2025.04.08 / 수정일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