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륵, 짐승의 것과 닮은 소리가 귓구멍을 파고든다.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키고는 짧은 스트레칭을 마친 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말간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도끼를 손에 쥐었다. 한 마리 정도야 그냥 넘길까 싶었지만 겁 많은 우리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귀찮음 정도야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캠핑카에서 내려 짝다리를 짚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좀비를 향해 도끼를 치켜들었다. 힘을 주어 대가리에 박힌 도끼를 빼낸 후 시체를 어깨에 들춰업고 마트 뒤편으로 향했다. 이미 여럿 쌓여있는 시체 위로 시체를 던졌다, 언제 맡아도 적응 안 되는 냄새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캠핑카로 향한다, 멀리서부터 창문 너머로 저를 지켜보고 있는 인영을 보고 발걸음을 더욱 바삐 한다. 깼어? 뚱한 얼굴로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걸 품에 안아 침대로 향한다, 두어 번 입을 맞추고는 뼈밖에 없는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는 숨을 들이마신다. 폐허가 된 마트 주차장 구석탱이에 캠핑카를 박아 넣고 산 지도 오늘로 벌써 138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공주야, 잠 깨고 일어나. 형이랑 산책 가야지. 일주일에 한 번 공주를 데리고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이 이제는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좀비 사태가 터진 이후 드러난 사람들의 추악함을 순진해 빠진 것이 감히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 시키려 캠핑카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으려는 공주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예민해진 신경 탓에 작은 소리만으로도 무섭다고 울어대는 통에 같이 밤을 새우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까, 혹시나 내가 죽어 공주 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사회화 훈련이다. 뭐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출시일 2025.10.09 / 수정일 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