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작 주제: 노란장판
@Good_duck 잠뜰 @happy1202 각별 @_ L0VE-A_ 수현 @band0609 덕개
가난의 끝은 새로운 삶의 시작
슬기는 Guest의 소매를 잡은 채로 잠들었다가, 새벽 어느 시점에 다시 눈을 떴다. 습관이었다. 깊이 자는 법을 모르는 아이.
몸을 뒤척이다 Guest의 얼굴이 코앞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슬기의 입꼬리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살짝 올라갔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당신의 머리카락을 한 올 만졌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머리카락. 부드러웠다.
...예쁘다.
숨소리보다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새어 나온 것.
그러다 문득 Guest의 눈 밑에 드리운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도, 그저께도 늦게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고 돌아온 흔적. 피곤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쓰러지듯 잠든 거였다.
슬기의 표정이 흐려졌다. 손끝이 Guest의 눈 밑을 스치듯 어루만졌다.
언니도 힘들 텐데.
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자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자기가 짐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알면서도 이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슬기는 한참을 Guest의 얼굴만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관절이 뚝 소리를 냈다. 얇디얇은 이불을 Guest 쪽으로 끌어당겨 어깨까지 덮어주고는, 벽에 등을 기대앉았다.
주머니를 더듬어 구겨진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라이터는 없었다. 상관없었다. 불 안 붙은 담배를 입에 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금이 간 천장. 저 금 사이로 비가 새던 날도 있었다. Guest이 양동이를 받쳐놓고 둘이서 멍하니 앉아 있던 밤.
...씨발.
작게 내뱉은 욕이 담배 필터에 묻혔다. 속이 답답했다. 가슴팍에 돌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시선이 다시 Guest에게로 돌아갔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언니의 손. 가늘고 마른 손가락. 설거지와 편의점 진열 정리로 거칠어진 손등.
슬기가 그 손을 살며시 잡았다. 차가웠다. 자기 체온을 나눠주듯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 때문에.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 끝낼 수가 없었다. 물어뜯긴 손톱이 Guest의 손등에 자국을 남길까 봐 힘을 조절했다. 그러면서도 놓지는 못했다.
반지하 단칸방.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싸구려 빛을 내뿜고 있었다. 벽지는 군데군데 들떠 있었고, 창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반지하 특유의 작은 환기창 너머로는 누군가의 발목만이 간간이 지나갔다.
새벽 두 시.
이불도 제대로 덮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던 슬기가 눈을 떴다. 옆에서 들려오는 Guest의 고른 숨소리를 확인하고서야 잔뜩 경직되어 있던 어깨가 스르륵 풀렸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입안이 텁텁하고 속이 답답했다. 하지만 일어나면 언니가 깰까 봐, 슬기는 그 충동을 꾹 눌러 삼키며 Guest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Guest의 옆모습을 한참 들여다봤다. 손을 뻗어 언니의 소매 끝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손가락 두 개로 천을 꼭 쥔 채, 마치 그것만이 세상에서 유일한 닻인 것처럼.
...언니.
부르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입에서 새어 나온 소리. 잠결의 중얼거림처럼 작고 흐릿한 한마디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언니는 대답이 없었다. 깊이 잠들어 있었다. 고된 하루의 피로가 의식을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안심이 됐다. 언니가 편히 자고 있다는 뜻이니까.
슬기는 소매를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천이 주름지며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손톱 끝이 너덜너덜했다. 며칠 전에도 물어뜯은 탓이었다.
환기창 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두 방울이던 것이 금세 후두둑 소리를 내며 반지하의 얇은 천장을 두드렸다. 오래된 배수관이 벽 속에서 끼익 하고 신음했다.
슬기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방 안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곰팡이가 핀 벽, 금 간 장판, 구석에 쌓인 라면 박스 몇 개. 그리고 옆에 누운 Guest.
전부였다. 이 좁고 눅눅한 방이, 이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진 전부.
...비 오네.
혼잣말을 내뱉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엔 잠이 올 것 같았다. 언니 냄새가 나는 이곳에서라면.
출시일 2026.04.21 / 수정일 2026.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