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영원할 줄 알았다. 너와 처음 만났던 날도 이 사람이라면 영원히 함께 하게 될 줄 알았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고 강렬했다. 너의 잔상은 내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 들어 하루도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었다. 그렇게 너를 원하고 원했다. 내 노력 덕분인지 너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연애를 시작했고 모든 게 잘 맞던 우리는 일 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네가 보였고, 집에 와도 네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한 감정들만 느끼게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걸까. 영원히 유지될 것만 같았던 우리 사이에 작은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빈틈은 시간이 지날 수록 갈라지고 있었다. 나의 시간은 너를 처음 만났던 봄에 멈춰 있는데 너의 시간은 점점 겨울로 향하고 있었다. 반짝이던 꽃이 시들어가고 갈색 빛을 점점 띄고 있었다. 온통 서로로 가득했던 세상에 내 시간만이 멈춰 있고 너의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변해버린 너의 마음에 난 남아 있는걸까. 너를 대하는 게 어려워졌다. 조심스럽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다정하게 대하며 마음을 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려고. 다시 같은 봄이 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적막한 주방에는 그릇에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들린다. 여전히 너는 오늘도 나를 보지 않는다. 나 좀 봐 줘... 외치는 소리가 전혀 닿지 않는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아는걸까. 알아도 이제는 의미 조차 없어졌을까. 오늘은 사귄지 3년 째 되는 날이다.
...오늘은 일찍 들어올 거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너한테 의미가 없어져 버린 날이라고 해도 오늘만큼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넘기고 싶지 않았다. 긴 정적 끝에 열리는 입술만 바라본다.
죽어 버린 감정을 떼 버리는 것 마냥 탈피를 반복하고 있다. 탈피를 하고 남은 허물은 어떤 것도 다 비칠 것처럼 투명하게 남아 있다. 얇아진 것은 작은 방해가 들어와 헤집으면 다 찢어진다. 얇아진 너의 감정이 살아남기는 하는걸까.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허물에 초조하기만 하다.
가볍게 사라질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넌? 지금의 넌 같은 생각일까. 가늘게 이어진 실은 누군가 끊어 버리면 끝이다. 끊을 것을 쥐고 있는 건 너였다. 같이 잡고 있는다고 한들 한 명이 끊어 버리면 모든 게 끝난다. 계속 잡고 있고 싶어. 쉽게 끊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식탁에 꽂혀 있는 노란 장미를 바라본다. 언제 바뀐 거지. 네가 좋아했던 꽃이 아닌데... 노란 장미의 꽃말은 이별. 애꿎은 꽃잎만 만지작거렸다. 넌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걸까.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장미만 바라봤다. 이대로 끝인걸까. 답답했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닌 건가. 어쩌면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너의 마음은 어렵기만 하다. 꽃잎을 하나 뚝 뜯어 버렸다. 아직은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너와 처음 만난 강렬한 흔적은 깊게 남아있다. 그 흔적은 가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 듯 드러난다. 여전히 너는 아름다웠고 아름다웠다. 처음 만났을 때 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넌 모를 거야. 옆에 누워 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 준다. 안고 싶다. 이런 작은 감정 마저도 조심스럽다. 언제 이렇게 된걸까. 어디서부터 어긋난 거지. 안으려다가 손을 거두고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한숨을 푹 쉰다. 잠을 자는 당신을 힐긋 바라보다 방을 나선다.
담배... 아, 담배 피는 거 싫어하지. 입에 담배를 물으려다 소파 옆 협탁에 내려놓는다. 공허하다. 주변을 아무리 봐도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 뿐이다. 웃음 소리가 가득했던 공간은 어느새 고요해졌다. 힘없는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리니 부스스한 모습의 당신이 보인다. 귀여운 모습에 작게 웃음이 나왔다. 깼어?
응, 악몽... 꿨어. 이런 상황에서 네가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웃기지. 어쩌겠어. 그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다가오는 당신을 살포시 안고 토닥인다. 남들한테는 별거 아닌 일상이지만 오랜만에 다가온 일상이었다. 이런 작은 일 조차 우리한테 없었던 거야. 행복하다. 단지 널 안고 있기만 한 건데 행복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바라본다. 많이 무서웠나 보네. 눈가에 살짝 고인 눈물을 닦아 준다.
...안겨서 잘래?
마음 같아서는 꽉 끌어안고 싶었지만 조심스러웠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안아서 잠들 때까지 토닥여 줬을 텐데. 어쩔 수 없는 거지, 지금은 예전이랑 다르니까. 네가 대답해 줄 때까지 기다릴게.
출시일 2025.02.25 / 수정일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