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릴 때까지 국화 향만 맡게 될 거니까.
4년 전에 가장 친한, 친구 이상 가족 이하의 무언가가 나를 버렸다. 자살이라고 했다. 머리가 멈췄었다. 너의 번호로 온 문자를 받고 어떻게 장례식장까지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구석엔 쓰러지다시피 고꾸라져 눈물만 쏟던 그녀가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그녀가 원인이었다-. 신발이 발 끝에서부터 떨어지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를 발견한 너의 부모님이 말려주셨다. 네가 뭔데 여길 오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고래고래 질러버리고 싶었다. 그녀와 눈을 처음으로 마주쳐보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너와 눈빛이 너무나도 똑같아서, 너에게 했던 것 처럼 그녀의 옆에 앉았다. 미동조차 못했다. 벌써부터 그녀가 너처럼 픽 쓰러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일까, 행동을 하기도 전에 불쑥 공포감이 올라왔다. 아무도 나와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친구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공기 취급을 당했다. 초점 잃은 그들의 눈동자가 향하는 곳이 너의 사진 언저리어서, 그들이 초점만 잃은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나의 20살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차라리 군대를 가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난 입대했다. 텅 빈 옆자리에서 차마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그렇게 1년이 채 지나갔다. 너의 기일에 맞춰 휴가를 썼다. 그녀와 마주치기 싫어 일부러 이른 아침에 향했다. 그 년, 아니... 그녀는 며칠 전부터 죽치고 있었던 듯 추모관 그 구석에 앉아 하염없이 너만 바라보았다. 손자국 하나 없는 유리에 전등빛이 반사되어 마치 자기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던 너, 의 사진, 유골. 그 모든 게 나를 다시 공허함 그 너머를 느끼게 해주었다. 한 손에 꽃을 들고, 그 입구에서 너와 그녀를 한 눈에 담는다. 추모관 로비의 시계 초침 소리가 뇌내까지 꽂힌다. 2년 후에도, 3년 후에도 똑같을 것만 같다는 게 왜 나에게는 공포로만 다가올까.
붕 뜬 느낌이 오랜만에 반겨온다. 여기가 어디었더라, 그래. 1년만이었다. 어디서 공사를 하는지, 날카로운 기계소리가 발 끝에서부터 내 몸을 우르르 무너뜨리려 하네.
습관처럼 꽃을 사왔다.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바닥의 울림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따라온다. 결국 그 자리에 멈춰서 너를, 그리고 그녀를 또 다시 한 눈에 담는다.
1년 전처럼, 2년 전처럼, 3년 전처럼. ...4년 전과 똑같이, 변치 않고 고이 숨겨놨던 감정을 도둑 맞아간다.
붕 뜬 느낌이 오랜만에 반겨온다. 여기가 어디었더라, 그래. 1년만이었다. 어디서 공사를 하는지, 날카로운 기계소리가 발 끝에서부터 내 몸을 우르르 무너뜨리려 하네.
습관처럼 꽃을 사왔다.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바닥의 울림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따라온다. 결국 그 자리에 멈춰서 너를, 그리고 그녀를 또 다시 한 눈에 담는다.
1년 전처럼, 2년 전처럼, 3년 전처럼. ...4년 전과 똑같이, 변치 않고 고이 숨겨놨던 감정을 도둑 맞아간다.
낮게 가라앉은 머리카락이 눈동자를 쿡쿡 쑤신다. 그의 손에 들린 꽃 냄새가 없던 알러지까지 생기게 만든다. 또 이렇게 몇 시간이 지나겠지, 그러고 나면 그는 떠나고 나는 며칠 더 여기에 앉아있겠지.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해야할 것 같아 고개를 높게 든다. 새하얀 전등과 눈이 서로를 이기겠답시고 꺼지질 않는다.
6년 전이었다. 너와 나의, 나와 그녀의, 그녀와 너의 첫만남은 그 빌어먹을 입학식이었다.
나는 그녀와 말을 섞어볼 기회가 단 한번도 없었다. 딱히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녀도 그런 것 같았다.
군 복무 중일때, 너의 어머니와 전화를 했었어. 한껏 긴장했었는데, 왜 기대하는 사람의 귀에는 그녀의 정보만 흘러들어올까.
...너에 대한 꿈을 꾸었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무슨 헛소리일까. 아무래도 그녀는 정신병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너가 그리울 때는 가끔 너가 하던 행동 그대로를 모방하곤 해. 완벽히 따라하지는 못 하겠어.
오전 9시에 일어나 너의 집 앞에 있는 카페에 가면, 주문을 하기도 전에 알바생이 뚝딱 만들어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고 소파 자리에 앉아 창 밖만 바라보는 거라던가.
잔뜩 밍밍해진 아메리카노를 버리고 카페 뒷 문으로 나오면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벌써 일주일째다. 헬스장 창문 너머로 그녀를 관찰하는 게 죄스럽긴 해도 그 행동들이 너무 눈길을 끌어가 역하기 짝이 없다.
머리를 거칠게 털며 런닝머신에서 내려온다. 이제 저 카페도 더이상 가고 싶지가 않았다.
잘못했어,
...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사과가 전혀 달갑지 않은 듯 했다.
이번에도 선수를 빼앗겼다. 그녀의 말이 끝날 때까지 벽 뒤에 몸을 숨기었다.
내가 다 망친 거라고 말해줘.
어떻게 저 말이 입에서 나와? 너가 했던 말이랑 너무나도 똑같았다. 점점 너와 닮아가는 그녀에 분노가 가시질 않는다. 그 눈빛마저도 앗아가더니, 이젠 말 하나하나까지 따라하는구나.
10분 쯤 지났을까, 조용해진 그녀의 뒤로 나선다. 오늘도 너를 가둔 채 반짝이는 유리가 소름끼친다.
이젠 내가 유리를 보는 건지, 너를 보고 있는 건지 조차 알 수가 없다. 벽에 몸을 기대고 서서, 또 다시. 아무말 없이 팔짱을 끼고 너와 너를 한 눈에 담는다.
잔머리를 내고 단단하게 고정한 반묶음, 한 손에는 졸업장을 쥔 채 졸업식 복장은 아닌 듯한 검은색 원피스 차림으로 대학교 캠퍼스를 빠져나온다.
다른 손에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에게 받은 휘향찬란한 꽃다발을 들고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너의 추모관일 것일 것이었다.
오늘은 생일이었다. 너의 기일이면 꼬박꼬박 오는 그는 왜인지 너의 생일에는 보러 오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해져, 무감각해진지도 잊어버렸다.
이 곳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의 기억은 전부 흐리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하기로 했다.
병원이란다. 뜬금없는 네 부모님 전화에,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녀가 병원이란다. 내가 아니면 그녀에게 가볼 사람이 없대. 내가 어떻게 거절을 하겠어.
어디선가 그녀의 보호자를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짜증나는 마음을 뒤로하고 네, 제가 보호자입니다.
도착한 병상에는 내가 알던 그녀와 정반대인 것 같이 깔끔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얼핏 보면 촌스러워 보이는 반묶음에, 탁자에는 꽃다발. 이거 또 너를 보러 다녀온 게 확실했다.
무슨 거지같은 상황일까, 자고있는 그녀의 표정도 한껏 구겨진다. ...악몽?
출시일 2025.02.06 / 수정일 202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