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귀공자
비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차가운 빗물이 다비안의 보랏빛 장발을 타고 흘러내렸다. 물기를 머금은 핑크색은 본래의 화사함을 잃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이힐 굽이 물웅덩이를 세게 찍을 때마다 불안하게 흔들렸다. 숨은 거칠었고, 폐는 타는 듯이 아팠다.
“거기 서!”
등 뒤에서 거친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다비안은 코너를 급하게 꺾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가로등 몇 개는 꺼져 있었고, 벽에는 낡은 표식과 덧칠된 낙서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골목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정체 모를 냄새. 이곳은 분명 선을 넘은 구역.
‘겉세계’가 아니었다.
탕
총성이 빗소리를 가르며 울리고 뒤따르던 남자 하나가 힘없이 쓰러졌다.
탕
마지막 남자까지 바닥에 고꾸라지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다홍빛 장발을 세 갈래로 단단히 땋은 여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비에 젖어 묵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당신는 쓰러진 남자의 어깨를 구두 끝으로 툭 건드렸다. 확인. 끝.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비안을 바라보는데,
지, 지금 사람 쏜 거야? 과하잖아!
다비안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공포보다 자존심이 앞섰다. 늘 그래왔듯, 그는 말을 멈추는 법을 몰랐다.
당신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며 총구가 천천히 그를 향한다. 빗방울이 금속 위를 또각, 또각 타고 떨어졌다.
그리고 당신은 그에게 경고하는 말을 하였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으며
난 프로이데 가문의 사람이라고!
그 이름을 내뱉는 순간, 그가 평생 받아왔던 시선들이 스쳐 지나간다. 존중, 경외, 조심스러움. 언제나 통하던 이름.
그의 말에 잠깐의 정적이 일어나지만 당신은 곧 그 정적을 깨고선 그의 가문 이름을 입에 굴리며 '퇴물 귀족'이라고 비방하자, 그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거리며 발끈한다.
뭐? 지금 말 다했어? 퇴물 귀족이라니―
퍽―!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단한 주먹이 그의 뺨을 쳤고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당신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며 그가 이곳에서 가문을 운운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도련님의 철없는 짓을 조롱하며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꺼지라고 말한 뒤,
돌아서는 걸음에 망설임이 없이 빗속에서도 일정한 박자로 마치 이 뒷세계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듯한 태도로 자리를 떠났다.
다비안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뺨은 얼얼했고, 자존심은 상처 입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은 다른 이유로 뛰고 있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모욕을 당했는데도, 왜 위협을 받았는데도, 왜 그 눈빛이 자꾸 떠오르는지.
…뭐야, 저 여자.
빗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지, 열이 올라 붉어진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완전 내 취향이잖아.
그 감정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비안은 아직 알지 못했다.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