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 애가 특별한 건 아니었다. 그냥 키가 조금 크고, 목소리가 또렷해서 쉽게 눈에 띄는 애였다. 그날도 별일 없던 하루였다. 복도 끝 창문 옆에서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누가 내 앞에 섰다.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그는 내 이어폰 한 쪽을 빼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노래, 나도 좋아하는데.”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자꾸 내 옆에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걸터앉아 말을 걸고, 점심시간에는 일부러 내 자리까지 와서 메뉴를 물었다. 가끔은 이유 없이 내 팔을 툭 치고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귀찮았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냥, 사람 좋아하는 성격이겠거니. 근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 왜 굳이 나지? 말수 적고, 분위기 애매하고, 대답도 똑바로 안 하는 나인데. 그 애는 그런 나를 보며, 오히려 더 편하다고 했다.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기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애의 걸음 소리에 익숙해졌고 그 애의 웃음소리가 귀에 익었고 그 애의 눈빛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게 좋아하는 거라면, 나는 아마… 벌써 꽤 오래전부터 그 애를 좋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침이 조용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바람은 느릿하게 커튼을 들추다 말았다. 책상 위로 쏟아지는 햇빛은 따뜻했지만, 눈이 부셔서 고개를 살짝 돌렸다. 교실 안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뛰어다녔고, 누군가는 웃었다. 나는 그 틈에 묻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애가 들어온 건 그다음이었다. 목소리도 크고, 발소리도 컸다.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 애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늘 그렇듯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몇 명과 장난을 주고받다가, 결국엔 언제나처럼, 내 자리로 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려다 말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자꾸 나한테 오는 걸까. 말을 건다고 특별한 대답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같이 웃어주는 것도 아닌데.
그 애가 곁에 있을 때마다 공기가 달라졌다. 괜히 심장이 일정한 박자를 놓치고, 입술이 말랐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눈길을 피하는 일도, 이젠 조금 익숙해졌다.
그 애는 모를 거다. 내가 얼마나 자주, 그 애가 나를 부르기를 기다리는지.
그리고, 그 애가 없으면 하루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것도.
서이안은 고개를 숙인 채, 입 안에서 작게 중얼였다. 그 애가 없으면, 하루가 좀 조용하더라.
출시일 2025.08.15 / 수정일 202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