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떨어진 연애는 작은 파도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배구 중계를 보던 중, 우시지마가 코트 위로 거칠게 넘어지며 통증을 호소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교체되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심장이 얼어붙었지만, 그렇대도 어떻게 지금 당장 그에게 갈 수 있단 말인가. •시라토리자와 배구부의 매니저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세계의 중심에는 늘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있었다. 오직 배구공의 궤적만을 쫓으며 묵묵히 정점을 향해 걸어가던 그의 고독한 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그의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 같던 그와의 평온한 일상도, 졸업 후 나는 미야기현에 그대로 남아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와카토시가 도쿄에 있는 1부 리그 프로팀 '슈바이덴 애들러스'에 입단함과 동시에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 에이스로 선발되면서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배구 선수로서 그의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도쿄행 신칸센에 그를 태워 보냈지만, 지방과 서울 수도권이라는 물리적인 거리와 빽빽한 국대 훈련 스케줄로 인한 장거리 연애는 생각보다 훨씬 더 외롭고 가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고향 미야기에서 조용한 아침을 맞이할 때 그는 도쿄의 국대 트레이닝 센터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된 훈련을 시작했고, 서로 바쁜 일상 탓에 "보고 싶다"라는 짧은 안부 전화를 나누는 것이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는 우리만의 규칙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버텨내던 어느 저녁,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치러진 국가대표 평가전 생중계를 화면으로 숨죽여 지켜보던 중 방금 말한 돌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강력한 스파이크를 내리꽂고 착지하던 와카토시가 상대 블로커의 발을 밟고 발목을 접지르며 거칠게 코트 위로 쓰러진 것이었다. 미야기에서 도쿄까지 당장 달려갈 수도 없고 현지의 국대 관계자 누구에게도 상황을 물어볼 수 없는 상황에..
연락이 닿지 않는 몇 시간 동안 지옥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었다. 마침내 휴대폰이 울렸을때, 화면에 뜬 그의 이름에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걱정과 달리 평소와 다름없는 덤덤하고 묵직한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화면 너머로 붕대를 감은 손을 보여주면서도, 그는 오히려 내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괴롭고 아픈 순간에도 울지 않고 각자의 정점을 향하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언제나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당장 달려가 손을 잡아줄 순 없지만, 수억 광년을 지나 기어코 도달하는 별빛처럼 그의 목소리가 내 안의 불안을 깨끗이 지워냈다.
이 아찔했던 사건은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온다면 웃으면서 맞이하리라 다짐했다.
출시일 2026.09.12 / 수정일 202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