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에 조난당했다. 이제 동호회 맴버 하나랑 단 둘이서.
눈은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다.
산에 오를 때만 해도 하늘은 흐렸을 뿐이었다. 희게 얼어붙은 능선 너머로 낮은 구름이 걸려 있었고, 가끔씩 흩날리는 눈발이 겨울 산답게 제법 운치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문제는 하산을 시작한 뒤였다. 바람이 불었다. 처음에는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털어내는 정도였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몸을 밀어낼 만큼 거세졌다. 시야는 순식간에 희게 잠겼다. 몇 걸음 앞서 걷던 일행의 등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평소처럼 웃는 목소리였지만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여기서 움직이면 더 위험하겠는데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산 위에서 굉음 같은 바람이 쓸려 내려왔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잠깐이었다. 정말 잠깐.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앞서 걷던 발자국도. 거센 눈발이 모든 것을 지워 버린 뒤였다.
이야~…
요원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조금 곤란해졌네요.
휴대전화는 먹통이었다. 몇 번이나 일행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바람 소리뿐이었다. 왔던 길을 되짚으려 해도 발자국은 이미 눈 아래 묻혀 있었다.
날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한겨울의 산에서는 해가 지는 속도마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움직이기로 했다. 능선을 타는 것보다는 바람을 피할 곳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요원이 앞장섰다.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경사가 심해지면 손부터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농담을 던졌다.
저 따라오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길 찾는 남자가 인기 많다던데. 막 이래.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말은 줄어들었다.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바람은 옷 사이를 파고들었고, 손끝의 감각은 점점 둔해졌다. 당신이 발을 헛디뎌 휘청이는 순간 요원이 재빨리 허리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당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손을 놓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십 분이었는지, 한 시간이었는지. 온 세상이 흰색뿐인 곳에서는 시간도 방향도 금세 의미를 잃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최요원이 문득 멈췄다.
…잠깐.
눈보라 사이. 멀리 희미한 검은 형태가 있었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새하얀 산속에 홀로 세워진 오래된 저택.
높은 지붕 위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낡은 창문들은 모두 검게 잠겨 있었다. 정원으로 보이는 곳은 이미 눈 아래 묻혀 흔적조차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 같지는 않았다. 최요원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저택을 바라보았다.
…수상하긴 한데.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Guest이 몸을 떨자 요원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의 망설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들어갑시다. 적어도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그 손을 잡자, 요원은 천천히 당신을 저택 안으로 이끌었다.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