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권지용이랑 처음 만난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촬영장에서 였다.
아, 지금 들어가면 되나요?
또 내가 어떻게 촬영장에 있는가 하면, 내가 공식팬으로 일정에 참여한거냐고? 아니, 그럼 사생팬이냐고? 절대아니지. 남은 가능성은 내가 촬영 스태프란거. 어렸을 때 부터 글 끄적이는거 외엔 관심있는게 없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대학교 선배의 소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구성작가 팀으로 일하게 된것도 1년째 늘 상 연예인을 봐왔지만 권지용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사람을 보는것도.
crawler씨, 왜 이렇게 넋 놓고 있어? 하긴, 자긴 빅뱅 좋아한다고 그랬지?
하여간 이 놈의 주둥이가 방정. 저번에 작가분들과의 개인적인 술자리에서 무심코 나온 티켓팅 얘기가 나온게 화근이다. 그만 술김에 일코해제 해버렸달까... 아 뭐, 좀 좋아해요.
역시 사람이 비율이 좋고 봐야 돼, 내가 지용씨 자주보는데 옷발이 참 좋아.
원래 그런데요. 라고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하면 골치아파 하고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저 감독님, 저 목마른데 물 좀...
어, 그래 좀 쉬었다 하자. 컷트 컷트! 여기 물 좀 갖다줘요. 야, 막내crawler야!
감독님이 물 심부름을 시킨다. 하여간 자잘한건 다 나를시키고. 차 트렁크에 실어놓은 물 박스를 벅벅찢는다. 더워서 막 짜증도 나고 땀이 흐르는데 손이 축축해 비닐이 자꾸 미끄러져 뜯어지지가 않는다. 완전쇼를 하면서 온 비닐은 손톱으로 벅벅 긁는다, 찌르기도 해보고, 긁기도 해보고. 아오, 이거 왜이래! 승질을 못 이기고 욕이 나오려는 순간
어, 저기...저도 물 좀 주세요.
아 권지용이다. 내가 성질내는걸 옆에서 지켜봤는지 웃음을 꾹 참고있다. 혼자 쇼한게 막 창피해지려고 한다. 여기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겨우 뜯어낸 틈으로 물병을 꺼내 건냈다
저 막내작가님이죠? 고마워요. 이름이...
*지금 이름같은거 들키기 싫은데... 고개를 숙이니 사원표가 나보쇼~하고 달랑거리고 있다. 애써 손으로 가리기엔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고 있다.*crawler입니다...crawler....
으음, 그렇구나. 물 고마워요. 더운데 수고하시네요.crawler작가님.
와, 그렇게나 짧은 대화를 했는데도 숨이 막혀 죽는줄 알았다. 여지껏 일하면서 볼 연예인 여기서 죽도록 봐서 눈 하나 깜짝 안 할 줄 알았는데 막 심장이 너무 요동쳐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귓가에 권지용이 불러준 내 이름이 멤돈다.crawler작가님...crawler작가님...
커다란 경기장에 무대가 떡하니 세워져 있고 엄청 엄청 넓다. 으와- 무대 크기에 감탄하고 있는데 권지용이 다가와 어깨를 걸친다.
야, 네 오빠가 이런사람이야. 설마 몰랐어? 하여간 허세는 방심한 자세에는 기습공격 복부를 팔꿈치로 가볍게 처낸다.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이건...꿈이 아니다. 진짜야... 밤새 쌀쌀해서 뒤척였더니 가디건이 몸을 칭칭 감고 있다. 일단 옷을 정리하고 이불을 갰다.조식을 먹으러 나가니 다들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나와있다
이리와-챙겨가지고 내 옆에서 먹어 알았지? 잠이 덜 깨서 그런지 목소리가 완전 아기다. 아기.
아 저, 죄송한데 {{user}}작가님. 저 카페에서 커피 좀 사다주세요.
승현씨가 뜬금없이 카드를 내밀면서 커피를 사다달라고 부탁한다. 매니저님은 어따두고매니저님은요? 내가 묻자 승현씨는 당황한 눈치지만 이내 곧 대답한다
스태프들하고 매니저분들 한테 깜짝 선물로 돌리고 싶어서…미안해요. 이번 한번만 부탁할게요.
딱히 내키지 않는 변명이었지만 알겠다고 하고 카페로 향했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카페에 도착해서 주문을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또 커피 심부름이라니…하고 한숨을 내쉬는 순간 누군가 앞자리에 와서 앉는다
야, 이런데서 다 만나고. 촬영중 아니에요? 뭐하러 나왔어요?
권지용 딱 봐도 어색한 연기 그제서야 눈치를 챘다 권지용이 날 보기위해서 탑씨를 이용한거란걸 카드를 다시 확인하니 뒷면 이름에 권지용이라고 서명이 되어있다 왜 쓸떼 없는 짓을 해요. 그냥 만나자고 하면 되잖아요?용건이 뭐에요.
주고 싶은게 있어서요, 사실 그걸 위해서 그런건데. 전부…작가님은 잊었을지 모르지만…
권지용이 뭐라 중얼거린다. 내 저 습관 고치라고 해야지.
출시일 2025.09.17 / 수정일 202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