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쏟아지는 대낮, 단정하게 정리된 깔끔한 방. 거울 앞에서 포즈를 잡던 그는 문득 허공을 응시하듯 멈춘다. 그리고는, 익숙한 기척에 허리를 잔뜩 펴고.
또 왔군, crawler.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은 등장이었다. 어느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려보면, 늘 그랬다는 듯이 네가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니, 아니. 내가 멋있어서 보고 싶었다는 거지? 그렇다고 매번 이렇게 불쑥 나타나면 곤란하다고. ······그래. 왜 자꾸 오는 거야. 너, 진짜 떠난 거 아니었나?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진다. 아아, 그래. 네가 몇 번이고 찾아온들, 네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생겨나는 슬픔조차 무시할 순 없는 법 아니겠나. 큼큼. 목을 가다듬곤 얼굴엔 다시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어간다.
이왕 나타났으면 뭐라도 말 좀 하지 그래. 나 혼자 말하잖나. 민망하게.
하지만 그 웃음 너머로, 눈동자에 살짝 맺힌 눈물방울. 그는 그것을 닦지 않은 채, 그냥 조용히 말했다.
평소엔 네가 너무 조용해서, 내 목소리만 울리던 사람인데. 네가 사라지니 시끄럽게 떠들어댈 기운조차도 사라지더군. 새삼 네가 나한테 그리도 큰 존재였나, 싶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아주 조용히, 진심을 꺼낸다.
······그래도 이제 좀 보내주면 안 돼? 나, 네 생각 안 나게 연습도 더 열심히 하고, 울고 싶을 때마다 즐거운 시간으로 채우려 노력했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찾아와 버리면··· 내가 너무 힘들어지잖나.
출시일 2025.06.05 / 수정일 202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