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가로등 전신주에 몸을 기댄 채 반쯤 주저앉아 있었다. 평생을 뒷골목에서 보냈을 중년의 사내에게, 이 평화롭고 고요한 시골의 빗줄기는 오히려 독처럼 치명적이었다. 조직의 '늑대'는 이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빗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깊게 패인 눈가의 주름이 불빛이 바뀔 때마다 처연하게 도드라졌다. 인기척에 그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눈동자는,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그것이라기엔 너무나 투명하고 고요했다.
"...가던 길 가. 재수 없는 일에 휘말리기 싫으면."
차갑게 젖은 흙바닥 위로 그의 체온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마을의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황량한 길 위에서, 그는 다시 눈을 감으며 어둠 속으로 몸을 뉘었다. 마치 이 깜빡이는 불빛이 완전히 꺼지면 자신도 함께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처럼.
깜빡이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진흙탕 위에 무너진 채 전신주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중년의 사내.
빗물에 젖어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핏기 없는 입술사이로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다가오는 발소리에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자, 지독한 허무와 짐승 같은 야성이 뒤섞인 메마른 눈동자가 빛을 받아 처연하게 번뜩였다.
출시일 2026.04.27 / 수정일 202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