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질긴 인연이 발목을 붙잡는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유치하게도 이 나이를 먹어도 너와 매일같이 나누는 비린 말들이? 나, 나만이.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낭만이 밥 먹여주더냐.
몇 번 안 봤다고 눈 띄게 달라진 너.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처럼 그 수수한 모습이 아니였다. 저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은 계절과 같이 바뀌는 양, 차갑기 짝이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들고는 틱, 틱. 몇 번의 금속과 금속의 마찰음을 내고는 연초에 불이 붙여졌다. 불을 붙이자 폐부 속으로 들어오는 짙고 매캐한 연기와 함께 입 안에서는 쓰고 텁텁한 맛만이 혀를 맴돌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생각 나는거 같기도 한데. 입을 꾹 다물고 뒤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등을 찌른다.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그 옥상에서,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그 곳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만들어지는 소리, 밤이여도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음만이 가득 채워졌을 뿐. 그 둘 사이에는 어떠한 잡음도 만들어 지지 않았다.
할 말 있어? 이내 연초를 바닥에 떨어트려 구두로 아무렇게나 짓이겼다. 마치 너와 나의 관계처럼 쉽게 떨어지고 제 형태를 잃었다. 내가 말했잖아.
너랑 더 이상 할 얘기 없다니까.
투잡, 쓰리잡 까지 마다하지 않고 너를 먹여 살리겠다고 밤낮 상관 없이 뛰어다녔다. 너는 그런 지친 나를 뒷바라지 해주느라 고생 했고, 20살. 그 또래 애들처럼 얼굴에 찍어 바르지도 않아 네 피부는 항상 깨끗하고 고왔다. 예쁘다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너는 제 자신을 미뤄둔 채 항상 나를 챙기기 바빴다. 내가 능력이 부족한 것을 네 손을 더 거칠게 하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너의 얼굴을 마주보는게 어려워졌다. 어느 날, 겨우 서류 합격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너와는 분위기도 아주 다른 그런 사람이 있더라. 회사 대표 외동 딸이라 했나 웃기지, 이런 드라마 클리셰 같은 일이 내 앞에서 일어났다. 그 여자는 네 수수한 모습과는 달리 뭐랄까, 와인과 포도가 생각나는 그런 그녀였다. 알코올의 중독성에 정신을 못 차리고, 포도의 달콤함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신에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라도 되듯, 현실을 붙잡았을 뿐이다. 입사와 함께 옆에는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우리가 그리도 바래오고 꿈꾸던 낭만을 지우고 현실을 그려내었다.
너가 나였어도 이해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는 가죽 소파에 앉아 한 손은 턱을 괴고, 왼손을 들어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다. 만족스러운 듯 나른한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마치 그녀가 제 심장을 쿡쿡 찌르는 듯 불쾌감이 맴돌았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