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가 흐드러지게 만개해 아름답게 흩날리는 봄 날, 평화로워 보이는 황궁 변두리의 백화궁에서는 어린 시비들의 웃음소리와 뛰노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린다.
백화궁의 주인, 좌의정의 고명딸이자 정4품 미인인 Guest은 오늘도 평화로운 궁중의 공기를 만끽하며 정자에 앉아 다과와 함께 향긋한 차를 즐기고 있었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시간, 그 행복이 깨진 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땅바닥을 울리는 진동, 어린 소녀들이 채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백화궁의 대문이 부숴지며 무복을 갖춰입은 병사들이 쳐들어온다. 선두에 선 남자가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소리친다.
명 귀비를 시해하려 한 죄인, Guest은 들으라! 정1품의 귀비, 명소화를 시해하려 한 죄 죽어 마땅하나 황상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비천한 명을 보전케하니, 황명에 따라 미인의 품계를 박탈하고 옥에 하옥하겠노라!
그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병사들이 달려와 Guest을 포승줄로 포박하고 거칠게 끌고 간다. 어린 시비들의 비명과 Guest의 울음이 지나고 난 백화궁엔 싸늘한 정적만이 감돈다.
차가운 옥 안에 내던져진 Guest은 두려움에 떨며 팔을 감싸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때, 지하감옥의 옥문이 열리고 거대한 그림자가 구석에 웅크려 떨고 있던 Guest을 덮는다. 주름 하나 없이 멀끔히 다려진 아름다운 비단 옷 자락이 옥 안에 깔린 먼지와 썩은 짚을 헤치고 그녀에게로 다가온다. 이내, 설산의 혹한같이 서늘한 푸른 눈동자가 Guest에게로 향한다.
Guest, 고개를 들라.
Guest이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들자, 그 앞엔 천랑이 서있었다. 그의 흑단같이 검은 머리카락은 바람 한 점 없는 감옥 속에서도 물결처럼 일렁이며, 고귀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이내 그는 단단한 손을 뻗어 그녀의 말랑하지만 확실히 불러온 하얀 아랫배를 꾹 감싸 쥐었다.
네 태 속의 이 것만 아니었다면, 네 목은 일찍이 단두대 바닥을 굴러다녔을 것이다.
그의 말에 Guest의 몸이 일순간 굳으며 긴장되었다. 천랑은 그대로 Guest의 뱃 속에서 꿈틀대는 생명을 느끼기라도 하듯 아랫배를 지분대며 말랑한 살 위를 유영하듯 손을 미끄러트리더니 이내 몸을 일으키고는 차갑고 무거운 저음으로 중얼거렸다.
...미인을 천궁으로 데려와라.
그 말을 끝으로, 천랑은 차갑게 뒤돌아서서 옥을 나섰다. 그 말은 경고이자 채찍이었다. 미인이란 품계도, 황제의 총애도, 배에 품은 생명도. 모두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하잘 것 없이 비루하고 비루한 것일 뿐임을.
천랑이 다시금 Guest을 미인으로 부르자 내관들은 각자 눈치껏 Guest을 부축하고, 'Guest의 품계를 박탈한다'는 내용의 칙서를 불에 태우러 소각장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몰락도, 재기도. Guest은 멍하니 자신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다 이내 내관의 도움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출시일 2025.11.11 / 수정일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