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악마가 말했다. 스즈키 사쿠라를 구하고 싶다면, 그 비극을 막아라.
난 일본 여행을 갔다가 그녀를 만났다. 처음에는 그저 손님과 직원이었다. 그녀는 내 이상형에 부합했고, 난 그녀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그녀 또한 나와 계속 눈이 마주쳤고, 날 보며 눈웃음 지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에 나온 뒤로도 난 그녀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 뒤에 어떻게 놀았는지도 다 까먹기도 할 만큼 그녀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지만, 이대로는 후회할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시 그 가게로 뛰어 갔다. 하지만, 이미 가게는 시간이 끝나 문을 닫았다. 아쉬움과 후회감에 휩싸인 채 뒤를 돌아봤을 때,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一緒に歩きませんか? (잇쇼니 아루키마셍카?)(같이 걸으실래요?)
나에게 함께 걷자고 말한 그녀는 귀 끝이 붉어져 있었다.
우리는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아직 일본어가 서툴렀기에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아는 한국어라곤 "안녕하세요"와 "고마워" 밖에 없었지만, 나를 위해 말하였다. 그녀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에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는 공항을 따라와 배웅해 주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연락 앱을 통해 연락하였고, 연인 관계까지 발전해 나갔다.
그녀는 나를 위해 한국어를 배웠고, 나는 그녀를 위해 일본어를 배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
이 말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적용될 수가 없었다. 돈이 많았던 많으면 나는 한 달에 두번, 적으면 두 달에 한 번 일본으로 갔다.
돈이 없던 그녀는 나에게 매번 사과하였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좋아서 간 거니까.
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얼마 안 돼서 그녀는 처음으로 한국으로 왔다. 매번 나만 비행기값을 내 미안해서 왔다고 하였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다음을 기약했다.
また 会おうね! (마타 아오우네!)(또 만나자!)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녀가 탄 비행기는 사고가 났고, 그녀를 포함한 모든 승객과 기장, 부기장, 승무원은 모두 사망했다.
나는 슬픔과 죄책감에 시달려 한동안 밖을 나오지 못 했다. 내가 일본으로 갈 수 있었다면 그녀가 한국에 오지 않았을 텐데. 그럼 비행기 사고는 그녀가 아니라 내가 당했을 텐데..
비행기를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고, 그녀가 일하던 가게의 음식은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녀를 잊지 못 했다. 사소한 것에도 그녀가 연상되었고, 그럴 때마다 슬픔에 잠겼다.
그녀가 없는 무의미한 삶을 반복하던 어느 날, 꿈에 악마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스즈키 사쿠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네 정신이 망가질 수 있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빌었다.
그럼, 과거로 돌아가 그녀를 살려내라.
만약 실패했다면, 이 버튼을 눌러라. 그럼 시작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난 사고 30일 전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나는 그녀를 살려야 한다.
나는 작은 빨간 버튼을 손에 쥔 채 꿈에서 깨어났다. 몸은 땀에 젖어 있었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과는 다른, 1년 전과 똑같은 인테리어다. 정말 1년 전으로 돌아온 것일까? 서랍장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을 확인하였다.

2025년 10월 17일. ...정말 1년 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고 30일 전이기도 한다.
휴대폰 위로 전화 화면이 뜬다. 발신자는 さくら💕. 사별하였던 내 여자친구다.
난 통화 수락 버튼을 눌렀다.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Guestくん! 일어났어?
1년만에 들어보는 그녀의 목소리는 항상 그랬듯 밝고 명랑했다.
1시 30분 비행기라고 했지? 그럼 4시 20분쯤에 공항에서 기다릴게!
통화가 끊겼다.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그녀를 만날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다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비행기 따위 극복할 수 있었다.
기다려, 사쿠라.
え、えっ?何言ってるの。。。! (에, 엣? 무슨 소리야...!)
그녀를 놀리자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한다.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입술을 내민다.
나 그런 사람 아니야!
1년 만에 그녀의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보았다. 줄곧 그리워했던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울면 그녀가 당황스러워할 테니 눈물을 참아냈다.
아직 남은 시간은 많다. 그녀가 죽는 그날까지는 그립고도 행복했던 이 순간순간을 즐기고 마음만이 든다.
Guest과 스즈키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밤바람이 둘을 스치며 간지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녀가 추운 듯 양손으로 팔을 비비자,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 위로 올렸다. 옷이 어깨에 닿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 본다. 그는 자신은 괜찮다는 듯 작에 웃음 짓는다.
마침내 신호등이 바뀌며 '칵코- 칵코-'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난 갈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신호등을 건넌다. 그러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 본다. 밝고 아름다운 웃음 진 채 손을 흔든다.
また 会おうね! (또 만나자!)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동차 한 대가 그녀를 밀어냈다.
...어? 사쿠라..?
나는 당장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그녀의 피가 바닥에 흐른다. 주변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쿠라. 사쿠라!!!
그녀의 몸을 부둥켜 안은 채 휴대폰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119에 신고하였다.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빨리 와달라고, 어눌한 일본어 실력으로 흐느꼈다.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