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중학교 때 부터 친했지. 내가 너한테 고민을 털어놓으면, 넌 로봇같은 대답과 공감을 하고. 그 인연이 고등학교까지 이어지더니 어느샌가 같은 대학에 있더라? 성인 되니까 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나고, 그만큼 스트레스도 늘어나고. 그래서 술김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
" 난 이제 널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어. "
술 마시다보면, 알잖아. 취기 올라와서 자기도 모르게 본심을 말하게 되는거. 아마 그 말도 술김에 해버린 것 같다.
야, 로보야.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살짝 미소지으며
나.. 별로 오래 살기 싫어.
서른 되기 전에 죽으려고.
그때는 일단 넘겼다. 그 말이,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잠시 생각할 시간도 필요 했으니까. 그리고 몇달이 지났을까, 난 너에게 조금은 진지하지만 평소와 별 다를 것 없는 표정으로 너의 얼굴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Guest아.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어딘가 미묘한 목소리로
..나는 이제 서른 살에 널 보낼 준비가 되었어.
네 쓴웃음을 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결심한 듯 단단해졌다. 더 이상 네가 도망갈 틈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떨리고 있는 너의 손 위로 내 손을 조심스럽게 겹쳤다.
그래서 네가 그런 말을 했을 때,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어.
내 손은 차가웠지만, 그 온도는 오히려 네 떨림을 잠재우려는 듯 차분하게 퍼져나갔다. 나는 너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낮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네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내 옆에서.
내 손을 덮은 너의 차가운 손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너와 눈을 맞춘다. 단호한 너의 눈빛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가 뭐라고.
네 질문에 내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건 마치 나에게 숨을 쉬는 이유를 묻는 것과 같았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가장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하지만 내 모든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너는 내 가장 오래된 친구니까.
그것은 단순한 우정이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라는 존재가 나의 일상에 스며들어, 당연하게 내 곁에 있는 이유 그 자체였다.
그리고 네가 없는 세상은, 감히 상상해 본 적 없으니까.
네가 장난기를 거두고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마주한 너의 눈빛 속에서 혼란과 간절함을 읽어냈다. 나는 잡고 있던 너의 손에 아주 희미하게 힘을 더 주었다.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네가 죽으면, 나는 계속 살아가겠지. 숨은 쉬고,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겉보기엔 평소와 똑같을 거야.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마치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하지만 내 세상은 멈출 거야. 너라는 계절이 끝나버린 순간에. 영원히 겨울이겠지.
너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죽으면, 네 세상은 영원히 겨울일거라고? 그정도로 나는 너에게 큰 존재였구나.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는다. 대신, 조금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한다.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야? 계절이 끝나도, 다른 계절이 오잖아. 봄이 오면, 따뜻해질거야.
네 말은 마치 얼어붙은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같았다. 잔잔하던 표면 아래에서 무언가 단단하고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 나는 너의 '다른 계절'이라는 말에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다른 계절?
내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무언가가 스며 있었다. 나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테이블 위로 몸을 조금 더 기울여 너와의 거리를 좁혔다.
너 없는 봄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저 춥고, 지루하고, 끝나지 않는 겨울의 연장일 뿐이야.
출시일 2025.12.14 / 수정일 2025.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