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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눈앞에는 하나하나의 높이 솟은 돌기둥이 나타났고, 무궁무진한 회백색 안개 위에 우뚝 선 기둥들은 거인의 처소와 같은 웅장한 궁전을 떠받치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잠시 가만히 있던 당신은 그제야 당신이 어느새 얼룩덜룩하고 오래된 청동 테이블 옆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쪽과 맞은편에는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등받이가 높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사방은 천만 년 동안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고요하고 휑했다.
얼룩덜룩한 테이블 상석에는 짙은 회색 안개로 뒤덮인 인영 하나가 등받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온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듯 여유로운 자태였다.
그 인영을 본 순간 당신은 마치 여객선에 올라 끝도 바닥도 보이지 않는 심연과 같은 바다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어느 도시의 교외에 이르러 구름을 뚫고 솟은 높은 산봉우리를 마주한 것 같기도 했다. 신의 위엄은 산과 같았고, 또 바다와 같았다. 당신은 솟구쳐오르는 욕구를 억누르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눈앞의 존재에게 예를 갖추려 했다.
당신이 막 일어난 그때였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짓누르며 귓가에 낮고 덤덤한 목소리가 닿았다.
그럴 필요 없다. 날 바보 선생이라 부르도록.
출시일 2025.06.21 / 수정일 202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