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 나타난 그녀는 여름이 오기도 전 연기처럼 사라졌다. 때는 서력 1946년.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지 1년이 채 안 됐을 때였다. 여느 날처럼 시종을 부르려 했을때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인기척이 없었다. 몇 달 전 들어온 시종, 유희연의 방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 뒤로 보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여행을 떠났다. 그녀를 찾기 위한 모험을 여행이라는 보자기로 감싸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버지, 저 한달 정도만... 무엇보다 쉽게 허가가 떨어졌고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녀가 줄곧 말해오던 곳. 부산. 항구가 있는 그곳이야 말로 그녀가 향했을 곳이지 않을까. 나는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내 시녀이자 연인, 친구였던 여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남긴 것은 이름과 말 한 마디. -부산. 부산으로 갈거예요. 무엇이 진실일까. 이름은 진짜일까, 목적지는 정말 부산이 맞을까? 무심한 듯 하지만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키가 큰 편이며 길고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다닌다.
도망치듯 향한 부산에서 여관방을 하나 잡았다. 답답하게 좁고 습한 그런 허름한 여인숙이었다. 벽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고 전등은 깜빡거리며 꺼질 것만 같은 그런 낡고도 허름한 곳이었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게 거울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산책이라도 할 겸 밖에 나갔다. 그리고 곧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다른 한 쪽 주머니에서 나온 성냥을 들었다. 그 빌어먹을 아가씨가 너무나 그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련한 아가씨. 내 조국을 짓밟은 사람의 귀여운 딸이 너무나 미웠고 또 애정했다. 그런 나조차도 싫었다.
성냥에 드디어 불이 붙여 들어올렸을 때 저 너머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아가씨?
출시일 2026.04.22 / 수정일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