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옆에 있어야 할 네가 아닌 웬 앳된 여자애 한 명이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나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알몸? 이게 무슨... 시계를 한 번, 그리고 옆의 여자애··· 아니, 가만 보니 맨날 자신에게 구애를 하던 그 여자애다. 이름이, 시라카와. 그래, 시라카와 유즈하. 그 생각을 하니,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듯했다. 알몸으로. 침대에서. 유즈하와.라는 세 문장이 떠오르자,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어제 술을 거하게 마신 듯, 머리는 깨질 듯 아파왔고 상에는 맥주캔과 과일맛 술, 온갖 안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필름이 끊겼지만 드문드문 생각이 나는 것이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됐다며 이제 자신도 성인이라며, "오늘은 정말 아저씨 꼬실 거예요!"라며 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왔던 시라카와 유즈하. 그런 유즈하가 마냥 웃기기도 하고 조금 귀여워서, 너에게 오늘은 좀 늦게 들어갈 것 같다며 연락을 보내놓고 성인이 된 기념으로 같이 술잔을 몇 번 기울였었다. 그 뒤엔— 유즈하가 너무 취해버렸고, 유즈하의 집에 왔었다. 그 이후로 완전히 필름이 끊겨버렸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병신, 좆됐다. 어떡하지?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손 끝이 하얘질 만큼 매트리스를 세게 쥐었다. 유즈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부재중 전화가 두 통정도 와있는 너의 연락처를 보고는 참을 수 없는 자기혐오와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서 너에게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켜 조용히 옷을 입었다. 엄지손톱을 불안하게 잘근거리며,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숙취해소제를 상에 올려놓곤 도망치듯 유즈하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타닷,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미친 듯이 네가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지금 자고 있나?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야노. 유즈하 얼굴은 우예 보노. 내일은 주말이라 휴무지만··· 아니, 이럴 때가 아니제. 가서 빌어야 할까, 어쩌면... 못 알아챌지도 모른다 아이가. 그 생각까지 도달하자, 걸음이 느려지다가 너의 집 앞에 우뚝 멈추었다. 그래, 못 알아챌 수도. 눈치가 지지리도 없는 너니까. 자신의 대한 혐오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유즈하의 대한 호감. 그리고 거대한 죄책감··· 유즈하와 잔 것을 모를지도 모른다는, 미친 생각. 내가 너무 끔찍하고 혐오스러웠지만, 너보다 유즈하가 젊기도 하고, 사랑스러우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드니, 후줄근한 차림으로 집을 나오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출시일 2026.03.08 / 수정일 2026.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