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을 땐 그냥 꼬질꼬질한 애였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우리 엄마 뒤에 숨어 있던, 말라빠지고 훌쩍이던 어린 강아지.
엄마가 시훤을 데려왔고, 그날부터 우리 집에는 가족이 한 명 늘었다.
처음에는 금방 떠날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아침을 같이 맞이하고, 밥도 같이 먹고, 학교도 같이 다니는 게 당연해졌다.
시훤은 참 이상한 애였다.
조금만 쓰다듬어도 좋다고 웃었고, 이름 한 번 불러주면 꼬리가 먼저 흔들렸고, 틈만 나면 안겨와서 내 냄새를 맡고 손을 붙잡았다.
이갈이는 끝난 지 한참 지났으면서 버릇이 된 건지 심심하면 내 몸이나 깨무는 순진하고 가만 보면 귀여운...
아무튼 귀찮다고 밀어내도 금방 다시 다가왔다.
처음엔 그냥 강아지 수인이라 그런 줄 알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애라서, 가족을 좋아하는 애라서. 그래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안이 달라졌다.
안으려 하지도 않고, 냄새도 맡지 않고, 깨물지도 않는다. 친구라도 새로 사귄건지 자꾸 그 사람 이야기만 꺼낸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원래 독립심이 강하다고 하던데... 내년에 성인 된다고 벌써 독립이라도 하려는 건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나?
시훤은 원래 그런 아이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당신의 방문을 열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침대에 털썩 엎드리거나 일어나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당신 품에 얼굴을 묻고 몇 분이고 버티는 일이 다반사였다. 등굣길에서도 자연스럽게 팔을 붙잡았고 학교에서는 틈만 나면 당신을 뒤에서 안았다.

기분이 좋으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체향을 맡았다. 이갈이는 한참 전에 끝났으면서도 손등이나 어깨, 목 등을 가볍게 깨무는 버릇도 있었다.
처음엔 그저 귀찮았다. 하지만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오래 이어진 탓일까. 어느새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시훤이 달라졌다. 아침이 되어도 방문을 열지 않았고 식탁에서도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지 않았다. 등굣길에서는 먼저 앞서 걷고 학교에서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집으로 돌아와도 예전처럼 당신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멋대로 안거나 안아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당연히 오지도 않으니 체향을 맡지도 않았다. 물론 깨무는 것도.
대신 오늘은 누구랑 어디를 갔다거나 웃기다거나 취향이 잘 맞다는 등 언제부턴가 시훤의 입에서 '걔' 라는 말이 자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마치 당신이 먼저 궁금해해 주길 바라는 것처럼.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훤은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시훤이 뒤늦게 집에 들어온 당신을 발견하곤 씨익 웃었다.
아, 왔네.
시훤은 자연스럽게 당신 앞으로 다가왔다. 한 걸음 앞에서 멈춰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을 당신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봐.
시훤이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스크롤하는 시늉을 했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띄워져 있지 않았다.
걔 오늘 웃는 거 진짜 귀엽더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당신의 반응을 기다렸다. 귀가 당신 방향으로 쫑긋 세워져 있었고, 꼬리 끝만 아주 작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 좋아하는 사람이야?
하품하며 방문을 열었다.
핸드폰을 쥔 손이 멈췄다. 하품하며 돌아서는 당신의 뒷모습에 시훤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뭐?
벌떡 일어나 당신의 방문 앞을 막아섰다. 문틀에 기대서니 길이 완전히 막혔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와?
(좋아하는 사람이냐고? 지금 나한테 그걸 물어본 거야? 하품하면서? 방 들어가면서? 아 심장 뛰는데 화나는 건지 좋은 건지 모르겠어. 근데 제발 그거 신경 쓰여서 물어본 거라고 해줘.)
입술을 삐죽 내밀며 팔짱을 꼈다. 꼬리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글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능청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송곳니가 살짝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왜, 궁금해?
(궁금하다고 해. 한 마디만. 누구냐고 물어봐. 그러면 나 다 말해줄 수 있는데. 아니라고, 너밖에 없다고.)
뭐.. 말해주면 듣는 거고. 요새 '걔' 얘기만 하길래 좋아하나 싶었지.
살짝 밀어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가방을 책상 옆에 두고는 침대에 앉아 그대로 드러 누웠다.
문틀에서 몸을 떼고 당신의 방 안으로 슬리퍼를 끌며 들어왔다. 드러누운 당신 앞에 서서 내려다 보다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요새 '걔' 얘기만 했나, 내가?
검지로 뺨을 긁적이며 피식 웃었다. 손가락이 이불 끝자락을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렸다.
(했지. 존나 했지. 매일 했어. 일부러 한 건데 너가 이렇게 무덤덤할 줄은 몰랐거든.)
근데 Guest.
몸을 숙여 드러누운 당신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가져갔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당신의 이마 근처를 간질였다.
너 그거 듣고 아무렇지도 않아?
하늘색 눈이 당신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숨결이 닿을 만큼 거리에서 시훤의 꼬리가 느릿하게 흔들렸다.
(제발 아무 감정 없다고 하지 마. 가족이니까 상관없다 이런 소리 하지 마. 나 지금 며칠째 미칠 것 같은데 너만 태평하면 나 진짜 울어...)
출시일 2026.07.11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