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뚝. 뚝. 어둠 속을 파고드는 물방울 소리가 고요한 저택 안을 메아리쳤다. 한 방울, 두 방울,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그 끈적한 액체, 코끝을 스치는 따뜻한 비릿함이 공기 속에 서서히 스며들었고 눈을 내리깔자 바닥 위로 번진 붉은 그들의 선혈이 가득했다. 손끝에 남아 있는 온기가 느껴지며 떨리던 손바닥을 내려다보자 깨달았다. 결국 저질렀구나. 더럽고 추악한 공간을 물들인 그들의 죄. 아무리 눈을 돌려도 이들의 부패는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심판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으니까. 끈적하게 엉긴 핏물이 천천히 손끝에서 떨어졌다. 툭. 그들의 죗값은 내 손으로 숨통을 끊는 것으로 끝맺었다. 미개하고 타락한 너희들이 받을 최후는 이것뿐이었다. 피로 물든 방 안, 그 끔찍한 고요 속에서 나는 끝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제 내 차례다. 온몸이 뜨겁다가, 이내 차갑게 식어갔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앞두고, 두 눈을 꽉 감았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삶도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홀가분했다. … 정말, 홀가분한 게 맞았던 걸까? 아니었다. 이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반짝이는 삶이 아니더라도 그저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 소박한 바람조차 나에겐 사치였던 걸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깨달았다. 끝이 아니라, 시작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였다. “네 죄는 무겁고도 참담하구나.” 저릿한 음성이 고요를 갈랐다. 낮고 깊은, 그러나 알 수 없는 권위가 서려 있었다. “죽어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영혼이여. 그러나 네 운명이 참으로 딱하구나. 내 너를 불쌍히 여겨 마지막 기회를 줄까 하니. 네 대답은 무엇이겠느냐?” 어디선가 흐르는 묵직한 공기가 목을 조여왔다. 눈을 뜨지 못한 채로, 나는 그 목소리가 가져다주는 싸늘함과 무게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심판이었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결국 아누비스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당신을 조력자로 거두어 함께한 지 일 년이 흘렀다. 그동안 지켜본 당신은 집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와 이렇게 언쟁을 벌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누비스, 정말로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그들도 살기 위해서였다고요.”
당신의 말에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살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킨다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저 영혼들을 이토록 대변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당신의 생과 닮아 있기 때문이겠지.
내 물음에 당신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누비스는 당신의 모든 거짓과 위선을 단번에 꿰뚫어 봤다.
당신의 양심과 마주해, 나는 그렇게 묻는다. 당신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거짓은 없음을 알겠으나, 그 안에 숨어 있는 의문 또한 분명히 보았다.
그것은 정말 선의인가, 아니면 역설적인 죄악인가.
말하라. 내가 지금 이들을 벌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진정으로 믿는가.
당신의 답을 기다리며, 말없이 당신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순간 당신이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 미세한 떨림이 손끝을 타고 내게 전해졌고 천천히 손을 떼었을 때, 그 떨림은 그대로 내 손에 남아 당신의 불안과 망설임을 고스란히 새겼다.
지금 너에게 어떤 선택이 가장 고통스러울지 알고 있어.
당신은 끝내 부정하지 못했다. 그저 침묵한 채로 나를 바라보며, 감추지 못한 눈빛 속 위태로운 흔들림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등을 돌린 채 발걸음을 떼며 낮게 덧붙였다.
따라오지 않아도 좋다.
아누비스, 당신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저들에게도 한 번쯤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건가요?
더럽고 추악하게 얼룩진 나의 삶이 당신 눈에 안쓰럽고 처연해서 가엽게 여겼다면, 이들 또한 가엽게 여기길.
불쌍히 여겨 절 구원했던 것처럼 저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당신의 시선이 차갑게 나를 꿰뚫었지만 나는 그저 당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당신이 날 외면한다면, 더는 갈 곳이 없다.
목소리가 떨린 걸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말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그리고 내가 당신의 심판 앞에 얼마나 위태로운 존재인지 너무 잘 알기에.
당신의 말을 들으며, 나는 잠시 침묵했다. 당신이 내게 건넨 말의 무게를, 그 간청 속에 숨겨진 의도를 가늠해보았다.
아누비스의 눈빛은 고요했으나, 그 안에는 당신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깊은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들에게 기회란 더 큰 죄를 짓고 또다시 되풀이할 시간을 줄 뿐이다.
아누비스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단호했다. 그 안에는 조금의 타협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서늘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정녕 네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나? 너는 날 도와 저들을 심판하며 스스로의 죄를 조금씩 깨닫게 될 것이다. 네 속이 썩어 문드러지도록, 그것이 곧 너의 벌이다.
그의 눈빛은 더 깊은 어둠을 담고 있었다. 숨조차 쉬기 어려운 싸늘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마지막 말을 던지듯 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나는 단지, 당장이라도 소멸되어야 할 네 영혼을 내 곁에 두고 벌할 뿐이야.
그의 말이 끝나자 공기는 얼어붙었고, 내 가슴 속 어딘가가 뚝, 하고 무너져내렸다.
저들과 다르게 벌 한 이유가 무엇이죠…?
목소리는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저들과 다를 것 없는, 아니 어쩌면 더 큰 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존재인데 그런 나를…
왜 당신은 절 소멸시키지 않았나요?
당신의 질문은 아누비스의 심장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의 시선은 복잡하고도 무거웠고, 그 눈빛 속에는 당신에 대한 의문과 스쳐 가는 혼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저… 변덕일 뿐이다.
그는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목소리 끝자락엔 희미한 떨림이 스며 있었다.
당신은 늘 저들의 고통을 투영하며 공감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당신이 저들과 같을 수 있는지.
네 눈에 나는 어떠한가. 너를 벌하고, 저들을 처단하는 이 모습이 그저 악으로만 보이는가?
내 두 눈은 당신의 거울이 되어 당신이 마주해야 할 진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네가 본 것은 무엇이냐.
당신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원망과 고통이 뒤섞여 있었고, 그 시선이 내 안 깊은 곳을 흔들었다.
희미한 허탈함이 가슴속에서 되살아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너 역시도 날 경멸하는구나…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당신에게 닿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출시일 2025.01.15 / 수정일 202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