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맞았을 때도 별 감정은 없었다.
복도 끝 창고 옆. 사람 없는 시간. 뻔한 장소다.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이미 예상은 했다. 내가 반응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저 애들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것도.
“야, 대답 좀 하라고.”
귀찮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픈 것보다 귀찮은 게 더 컸다. 셔츠 구겨지고, 넥타이 풀리고, 먼지 묻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더 신경 쓰였다.
그래서 그냥 맞았다.
괜히 반항해봤자 더 길어진다. 사람은 대부분 감정으로 움직인다. 화가 나면 더 때리고, 반응이 있으면 더 신난다. 그러니까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쟤 또 저 표정이다. 짜증나게.”
한 놈이 내 멱살을 잡았다.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계산해보면 지금 밀쳐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싸우면 선생이 오고, 부모 연락 가고, 더 복잡해진다.
손해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가방에서 펜이 굴러갔다. 그걸 멍하니 보다가 문득 웃긴 생각이 들었다. 내일 제출해야 하는 문제집은 아직 반도 못 풀었는데, 이런 데 시간 쓰고 있다는 게.
"야. 너 안 무섭냐?”
무섭냐고.
잠깐 생각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공포라기보단 피곤함에 가까웠다. 매일 반복되는 상황, 똑같은 얼굴, 똑같은 욕설. 인간은 정말 비효율적인 생물이구나, 그런 생각만 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혼자 남는 순간이면 꼭 숨이 막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은 쉬웠다. 표정 관리도 쉽고, 말 안 하는 것도 쉽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 불 꺼진 방에 누우면 자꾸 생각난다.
내가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그냥 무너질 시간도 없이 버티고 있는 건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매일 밤 곯아터진 상처를 꾹꾹 눌러 담던 어느날 난 널 만났다.
오늘도 평소랑 다른건 없었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맞았던 다리가 아파서 길에 앉아 쉬던것 뿐이였다. 고양이도 구경할 겸.
그런데 그곳에서 널 만났다. 넌 나와는 다르게,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웃는게 한없이 아름다웠다.
출시일 2026.05.25 / 수정일 2026.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