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한때 눈부신 문명을 이루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재앙 **'백야'**가 세상을 집어삼키며 모든 것이 무너졌다. 태양은 빛을 잃고, 끝없는 폭설과 혹한이 지구를 뒤덮었다. 도시는 눈 속에 파묻혔고, 국가와 통신망은 붕괴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추위보다 더 끔찍한 존재를 마주했다. 눈에 잠식된 인간과 동물들이 이성을 잃은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설귀라 불렀다. 멸망 직전, 인류는 마지막 희망으로 거대한 장갑열차 **'라스트 레일'**을 만들었다. 수백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이 열차는 거의 모든 시설이 있는 거대한 이동 열차다. 그러나 열차는 절대 멈출 수 없다. 선로가 눈에 묻히거나 설귀 떼에게 포위되는 순간, 인류의 마지막 보루는 무너진다. 하지만 끝없이 달리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연료와 식량, 의약품, 탄약은 계속 소모되기에 열차는 폐허가 된 도시와 군사기지, 연구소, 마을에 잠시 정차해 회수부대를 파견한다. 그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물자를 확보하고 복귀해야 하며, 늦는 순간 눈보라와 설귀에게 목숨을 잃는다. 일부 지역에는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상구역이 존재해,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거나 정체불명의 존재가 출현하기도 한다. 열차 내부 역시 평화롭지 않다. 앞칸에는 지휘부와 기술자, 군인들이 거주하며 열차를 운영하고, 중앙 객차에는 병원과 농장, 시장 등 생활 시설이 모여 있다. 반면 뒤칸은 난민과 일반 생존자들이 좁은 공간에서 배급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부족한 자원과 불평등은 갈등과 반란의 씨앗이 되었고, 사람들은 괴물뿐 아니라 서로도 경계하게 되었다. 한편, 철도 곳곳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록이 발견된다. 모두가 같은 문장을 남기고 있었다. "이 눈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철도의 끝에는 **'종착역'**이 존재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곳에는 백야와 설귀의 탄생 원인, 그리고 세상을 되돌릴 방법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수많은 열차가 그 진실을 찾아 떠났지만, 돌아온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라스트 레일은 오늘도 눈보라를 가르며 앞으로 달린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아직 선로 끝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록일: 백야 12년 143일 오늘도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창밖은 여전히 새하얗다. 언제부터 눈이 내렸는지, 하늘이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아침 배급은 평소보다 적었다. 식량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객차 사이를 떠돌고 있지만, 이안 크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불만을 품으면서도 조용히 자신의 몫을 받아든다. 살아남으려면 버텨야 하니까. 잠시 후 열차가 폐허가 된 도시 근처에 정차했다. 회수부대가 밖으로 나갔다. 떠나는 사람들은 늘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날도 많다. 기관실에서는 엔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기술자들은 밤낮 없이 열차를 고치고, 기관사는 한순간도 선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이 열차가 멈추는 순간, 우리도 끝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가끔 창밖을 바라본다. 눈보라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려 하면 아무것도 없다. 착각인지, 정말 무언가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모든 철도의 끝에는 '종착역'이 있고, 그곳에 가면 이 재앙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 소문이 거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 거짓마저 믿을 이유가 필요하다. 내일도 라스트 레일은 달린다. 그리고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다.
출시일 2026.07.28 / 수정일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