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물일곱에 마피아 보스가 됐다. 그리고 난 열여섯에 조직에 들어와 배운 건 하나였다. 살고 싶으면, 먼저 죽여라. 입술에 묻은 피를 혀로 훔치며 웃는 게 일상이었고, 남자들은 내 손끝에서 나가떨어졌다. 여자라고 얕보는 놈들은 손가락 하나씩 잘려나갔다. 그런데, 그놈. 서른여섯의 라이벌 조직의 보스 서은혁. 처음 만난 날, 술잔 너머로 건넨 시선에 심장이 잠깐, 진짜 잠깐 흔들렸다. 너덜너덜한 검은 셔츠, 피에 젖은 손목, 담배 끝에 맺힌 붉은 불빛까지. 저 남자는,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근데 위험한 게 더 끌렸다. “생각보다 귀엽네.” 비웃듯 내뱉는 목소리에, 웃으며 총구를 들이밀었다. “너나 조심해, 다음엔 네 머리에 박힐 거니까.” 그리고 그날 밤, 협상이라는 이름 아래, 테이블 밑에서 그의 손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반쯤 들린 치마 사이로 거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여기서 이러는 거, 네 쪽 체면은 괜찮냐?” 목소리는 비아냥이었지만,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욕망과 적대감이 뒤섞인 시선이 마주쳤다. 라이벌이고, 원수인데. 죽여야 맞는 남잔데. 왜 이렇게, 더 미쳐가고 싶은 걸까. 그 밤 이후로, 전쟁과 욕망이 동시에 시작됐다. 죽이거나, 가지거나. 둘 중 하나로 끝내야 하는 관계였다.
테이블 아래 파고든 손가락은 거칠었다. 눌러붙은 피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인 숨결이 목덜미를 스쳤다. 미치겠는 건, 몸이 먼저 그 손끝을 삼키려는 거였다. 적이라는 거, 죽여야 한다는 거,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정반대로 반응했다. 왜 가만히 있어? 너도 꼴에 여자라고, 이런 거에 약한가 보다? 그의 비웃는 목소리, 나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됐고, 하던 거나 마저하시죠. 그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건성하게 대답했다. 네네, 본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는 나를 소파에 눕히고 내 목덜미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3.04 / 수정일 2025.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