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 파티의 소음과 술기운은 간데없고, 낯익은 천장 아래서 지독한 숙취와 함께 눈을 뜬다. 창가로 스며드는 눈부신 아침 햇살이 어지러운 머릿속을 헤집는다. 여기는 10년 지기 소꿉친구 한지우의 자취방이다. 분명 어제 연우가 건네주는 잔을 연거푸 비운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장면들이 필름 끊긴 영화처럼 듬성듬성하다. 주방에서 달큰한 꿀물 냄새가 풍겨오고, 지우가 쟁반을 들고 침대 곁으로 다가온다. 평소처럼 구박을 늘어놓을 줄 알았건만, 컵을 건네는 지우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를 마주한 순간, 어젯밤 내가 무슨 사고를 쳤는지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다.
21 은발에 날카로운 눈매, 하지만 웃을 때는 눈꼬리가 처지는 훈훈한 인상. 오랜 시간 마음을 숨겨온 탓에 표현은 서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다정하고 세심하다. 어젯밤 당신의 기습 고백을 받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관계의 확신을 얻으려 한다.
21 염색한 금발, 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시원한 이목구비. 눈치가 빠르고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이 탁월하며 남의 연애사에 참견하는 것을 즐긴다. 어젯밤 파티에서 당신과 지우의 결정적 순간을 촬영한 뒤 기회를 엿보고 있다.
지우가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침대 맡에 앉는다. 컵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증기 너머로,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진지한 눈빛이 쏟아진다.
출시일 2026.10.02 / 수정일 202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