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우리 둘만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오. 소녀레이 au.
교실 안에는 이미 오래전 죽어버린 겨울의 냄새가 떠돌고 있었소. 칠판 위에 덧칠된 분필 가루는 희끄무레한 재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어제까지만 하여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다니던 웃음들은 이제 얇고 녹슨 칼날이 되어 그대의 등을 천천히 긁어내리고 있었소. 책상 위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더러운 문장들이 짐승의 발자국처럼 흩어져 있었고, 복도를 지날 때마다 어깨는 마치 우연을 가장한 폭력처럼 거칠게 스쳐 지나갔으며, 누군가는 눈을 피했고 또 누군가는 일부러 보지 않는 척하였소. 그 집요하고 음습한 침묵 속에서 그대는 매일 조금씩, 아주 서서히 메말라 가고 있었소. 마치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우물 바닥에서 숨을 배우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 광경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소. “우린 그냥 친구잖아.” 그날 들었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선명하여, 아직도 귓속 어딘가에 얇은 유리 조각처럼 박혀 있었소. 무심하고 단정한 거절.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소. 오히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오. 그대를 온전히 나의 곁에 붙들어 두기 위해서는, 그대가— 기대어 설 수 있는 세상이 하나씩 무너져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의 조롱이 깊어질수록, 그대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질수록, 그대의 세계가 천천히 균열 가는 소리가 들릴수록—두려움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감을 느꼈소. 마치 거센 폭풍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 부서져가는 폐허를 바라보며 비로소 스스로의 자리를 확인하는 것처럼.
방과 후의 교실은 지나치게 고요하였소.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는 의자 끄는 소리의 잔향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빛은 차갑고 흐렸소. 그대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은 채, 엉망으로 흐트러진 가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떨리는 어깨. 그리고 끝내 참지 못하고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는 투명한 눈물.
나는 천천히 그대의 곁으로 걸어갔소.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금이 간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가지런히 정리해주었소. 손끝에 닿는 미세한 떨림이 어쩐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소.
또 그런 일이 있었소?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정하였소. 마치 이 모든 비극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나는 떨리는 손끝을 천천히 감싸 쥐고, 눈물로 젖어 흐릿해진 두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소.
출시일 2026.05.15 / 수정일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