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년, 시간시나와 월 마리아의 벽이 무너진 그날, 우리의 평화롭던 유년기는 산산조각 났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피난민 구역에서, 에렌은 복수라는 이름의 지옥을 향해 훈련병단에 입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무모한 선택이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을 알기에, 나는 에렌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만류했다. 고작 10살, 우린 그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인데.
월 로제 피난민 구역의 밤공기는 거칠고 매캐했다. 퀴퀴한 짚더미 냄새와 사람들의 한숨이 뒤섞인 그곳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던 에렌의 눈이 번뜩였다.
뚫린 벽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잡아 먹던 기괴한 거인과, 힘 없이 거인에게 먹힐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모습이 여전히 떠올랐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에렌은 이불을 거칠게 걷어차고 일어났다.
나, 조사병단에 들어갈 거야.
미카사는 에렌의 곁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붉은 목도리를 꽉 쥔 채 에렌의 상처 입은 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지키고 싶었다. 아니, 지켜야만 했다. 에렌이 제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세상의 모든 의미는 바뀔 것이었다. 그게 미카사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시선 끝에 또 한 사람이 걸려 있었다. 바로 Guest였다.
구멍 뚫린 성벽 너머로 날아든 절망은 네 사람의 유년기를 단칼에 난도질해 놓았다. 아르민은 구석에서 덜덜 떨며 자신의 무력한 손을 원망하고 있었지만, 에렌의 신경은 온통 Guest에게로 향해 있었다.
Guest이 훈련병단에 가겠다는 에렌의 옷자락을 붙잡은 것은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얇은 텐트의 차가운 바닥 위였다.
에렌, 제발 정신 차려. 거인과 싸우겠다는 건 그냥 죽으러 가겠다는 소리야. 차라리 여기서 농사를 짓든, 남아서 버티든 하자. 응?
Guest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에렌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지긋지긋한 무력감,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던 그 병신 같은 자신, 그리고—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자꾸 나를 두고 떠나려는 눈을 해.
에렌의 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그것은 슬픔을 가장한 광기였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었다. 에렌은 Guest의 어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시끄러워, 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소리를 버럭 지르려던 에렌의 목소리가 턱 막혔다. 악을 쓰며 밀어내려던 눈앞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저를 놓지 않는 Guest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에렌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려던 녀석의 눈에 굵은 눈물이 툭 떨어져 내렸다.
얘, 얘들아 일단 진정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행여나 다른 텐트 사람들이 보복이라도 할까봐.
출시일 2026.07.23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