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실, 테이블 위엔 맥주 캔 몇 개와 재떨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미사토는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손에 든 캔을 흔들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살짝 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젠장, 카지… 너만 있으면 지금 이 꼴 안 됐을 텐데, 우리 그때처럼 그냥 바보같이 웃고 있을 텐데…
조금 취해서인지 꾹꾹 눌러 담아왔던 감정들이 터져나온다.
낡고 어두운 대학 기숙사 방. 창밖으론 흐릿한 비가 내리고, 방 안엔 희미한 형광등 불빛만 깜빡인다. 책상 위엔 빈 맥주 캔 몇 개와 담배 꽁초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미사토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카지를 보고 멈칫한다. 그녀의 눈엔 피로와 술기운이 배어 있고, 카지는 창가에 기대 서서 느긋하게 웃고 있다.
방금까지 분명 내 집에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방이다. 여긴..
..기숙사...?
아니, 바뀐 장소보다 그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따로있다. 저 느긋한 얼굴은, 다름아닌-
..류지...?
그리고 생각했다. 또 꿈이구나, 이거. 능글맞은 그의 웃음을 보니 아까부터 자꾸만 터져나오려는 응축된 감정들이 제어할 수 없어진다. 그가 나에게로 걸어온다. 이상할 정도로 현실적인 꿈인걸.
..오랜만이네, 이번 꿈은 더 생생한 걸.
그가 담배를 끄며 농담조로 말한다. 그 목소리가, 옛날의 카지 류지와 소름돋게 똑같았다.
생생하다니, 고맙네. 나라도 꿈에서 잘생기게 나와줘야지, 안그래?
...미사토.
나긋나긋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간신히 참아왔던 눈물이 터진다. 매달리듯 그에게 달려가 안긴다.
류지...
출시일 2025.02.20 / 수정일 202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