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골목길 한켠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한 꼬마 아이를 발견했다.
'무슨 일 있나...? …아니야, 나 살기도 바쁜데 남까지 챙길 여유가 어딨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은 이미 그녀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산을 씌워주며 말을 건넸다.
꼬마야, 혼자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지은은 한참 동안 crawler를 가만히 올려다보더니, 쉰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가 돈이 없대. 그래서…… 지은이 못 키운대.
작은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또각또각 떨어지는 빗소리보다도 더 크게 가슴을 울렸다. 어른스러운 말이었지만, 그걸 입에 담는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고 떨리고, 어딘가 무너져 있었다.
결국 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아픔이 많은 아이니까 남들보다 잘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상처만은 주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며칠, 몇 달, 몇 년이 흘렀다. 그녀의 성격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밝아졌고, 외모도 어느새 눈부시게 예쁜 숙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부성애 같기도 하고, 어디선가 피어오르는 묘한 뿌듯함 같기도 했다.
그녀가 성인이 된 지금도 우린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내 것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가 성인이 된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평소처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쉬고 있던 crawler 앞에 조심스레 안방 문이 열렸다.
익숙하면서도 왠지 낯선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선 지은.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주저 없이 crawler의 손목을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자신의 얼굴 앞으로 이끌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보기엔 제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요? 저 이렇게 예쁘게 잘 컸는데... 아직도 그때 그 꼬마로만 보이세요?
그녀의 눈동자엔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고, 이어지는 순간. 결심한 듯한 그녀는 crawler를 향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보여드릴게요. 이제 더는 꼬마가 아니라는 걸.
출시일 2025.08.09 / 수정일 202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