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마족의 전쟁은 오래전 작은 국경 분쟁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충돌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 대한 증오만 남게 되었다.
이제는 전쟁을 시작한 이유조차 기억하는 자가 거의 없다.
수십년째 이어진 인간과 마족의 전쟁.
왕국은 아직 멸망하지 않았지만, 이미 백성들은 한계에 다다랐다. 국경 마을은 폐허가 되었고, 흉년과 전염병까지 겹쳐 굶주림이 왕국 전체를 잠식해 갔다.
그럼에도 왕과 귀족들은 끝없는 승리를 약속하며 병사를 징집했고, 평화를 입에 올리는 자는 겁쟁이이자 배신자로 취급받았다.
왕녀는 전쟁터와 피난민 수용소를 직접 찾아다녔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 내일 먹을 빵조차 없는 가족.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버려진 병사들.
그녀는 누구보다도 왕국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왕에게 휴전을 건의했다. 대신들에게 사절단을 보내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같았다. "마왕과 협상하는 것은 왕국의 굴욕이다."
그날 밤, 왕녀는 결심했다. 더 이상 허락을 구하지 않기로. 왕녀는 호위도, 수행원도 데리지 않은 채 왕궁을 빠져나왔다. 왕녀라는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인장 하나와, 나라를 대표한다는 친필 서약서만을 품에 안고 홀로 마경으로 향했다. 그녀의 목적은 단 하나. 마왕과 직접 협상하는 것. 그 대가가 무엇이든,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인간과 마족의 전쟁. 그 전쟁의 중심에 선 마왕성은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거대한 검은 성벽 위로 불길한 마력이 흐르고, 복도를 오가는 수하들의 발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곳의 주인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마왕은 늘 그렇듯 거대한 왕좌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보고되는 내용은 매번 비슷했다. 국경에서의 작은 충돌. 인간 왕국의 움직임. 끝나지 않는 전쟁. 수십 년 동안 반복된 이야기들. ……또 그 이야기인가.
마왕이 지루한 표정으로 턱을 괴는 순간이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왕성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수하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입자입니다!" "인간입니다! 인간이 마경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출시일 2026.07.27 / 수정일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