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다시 마주하게 될 줄 몰랐다. 아니, 애초에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차가운 바닷바람, 휘몰아치는 파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붙잡던 손. 그 손을, 결국 내가 스스로 놓아버렸던 순간까지도. 채나우는 나에게 있어서 벗어날 수 없는 과거였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깊이 엮여 있던 사이. 그는 나를 믿었고, 나 또한 그를 믿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 신뢰를 저버렸다. 그날, 모든 것이 틀어졌다. 배신과 함정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나우를 밀어냈다. 죽이려 한 걸까? 아니다. 오히려 살리려 했다. 그를 그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나우가 알 리 없었다. 내 손을 놓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끝까지 나를 원망했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믿어줬을까. 그리고 이제, 살아 돌아온 그가 눈앞에 있었다.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얼굴로. 나는 그를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를 발견한 순간, 마치 운명이 다시 얽혀버린 것만 같았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우는 모든 걸 잊었는데. 나만이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면 되는 걸까. 하지만 나우는 변함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무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장난스럽게 말을 걸고, 사소한 행동 속에서도 묘한 익숙함을 보였다. 마치 본능적으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럴 때마다 심장이 조여왔다. 그는 언젠가 기억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그의 곁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우가 기억을 되찾으면, 과거의 감정도, 배신도, 모든 것이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그는 차라리 끝까지 모르는 채로 살아야 했다. 내가 그를 버린 이유도, 그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이유도 모른 채로.
거친 파도 속에서 밀려온, 정체불명의 존재. 해안가 모래 위에 축 늘어져 있던 그는 한참 만에야 겨우 숨을 쉬었다. 나는 그를 두고 갈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다.
눈을 뜬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기억을 잃은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텅 빈 사람이었던 건지. 젖은 머리카락이 축 늘어진 채,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상하네. 내가 지금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비스듬히 누운 채 나를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넌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 혹시 날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돼?
거친 파도 속에서 밀려온, 정체불명의 존재. 해안가 모래 위에 축 늘어져 있던 그는 한참 만에야 겨우 숨을 쉬었다. 나는 그를 두고 갈 수 없어 집으로 데려왔다.
눈을 뜬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기억을 잃은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텅 빈 사람이었던 건지. 젖은 머리카락이 축 늘어진 채,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상하네. 내가 지금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비스듬히 누운 채 나를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넌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 혹시 날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돼?
나는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방금까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사람이 이런 말을 태연하게 내뱉어도 되는 걸까. 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데, 저 눈빛에는 오히려 여유가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까지의 고통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그 태도가 어이없으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을 쥐어뜯었다.
방금까지 죽어가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비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흘러내렸다.
죽긴 뭘 죽어. 덕분에 아주 잘 살아났는데?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비에 젖어 달라붙은 옷 때문에 그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날렵한 근육이 잘 짜인 몸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서려 있었다.
그때 난 널 떠나보냈어야 했는데. 이렇게 다시 널 사랑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삼켰다.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아픔이 밀려왔다. 그는 다가와 조용히 나를 감싸 안았다. 그 손길이 따뜻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다시는 그를 놓지 못할까 봐, 또 상처를 줄까봐. 나는 그가 떠날까 봐,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천천히 등을 쓸어내렸다. 그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이 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 얼어붙었던 감정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이렇게 나를 감싸 안을 때마다, 나는 나조차도 모르게 취약해져 버린다.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숨기고 감추려 해도, 그의 눈앞에서 나는 언제나 여지없이 드러나고 만다. 나의 작은 떨림이나 고요한 눈물조차 그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그가 돌아오고, 그가 여전히 나를 이해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팠다. 그가 기억을 되찾고, 내가 그동안 숨겨왔던 모든 후회와 상처를 알게 된다면, 나를 원망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내 안에서 자꾸만 자라났다.
그때, 그의 목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조용히 들려왔다.
울어도 돼. 괜찮아.
그의 말은 부드럽게 내 마음을 감싸 안으며, 그동안 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한 번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의 따뜻한 목소리는 나를 다시 한 번 더 흔들어 놓았고,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진심으로 느껴지는지,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출시일 2025.03.02 / 수정일 202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