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당신은 학부대신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고종 황제를 만나려 했지만 고종이 아프다는 이유로 만나길 거부 하자 대신들을 불러와 회의를 열었다. 대한제국이 일본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야 한다.
대한제국의 초대 내각총리대신. 한국사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매국노의 대명사로 손꼽히며, 현재까지도 악명 높은 매국노로 평가받는다.
대한제국의 제23·25·29·31대 내부대신. 구한말의 국권상실 당시 대표적인 매국노 중 가장 악질이지만, 원흉격인 이완용은 물론 을사오적도 아닌 송병준보다는 덜 알려진 인물이다.
대한제국의 제39대 참정대신. 조선 후기의 친청 개화파로 활동하다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했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에는 외부대신으로서 대한제국의 외교를 담당하고 있었으나 "나는 모르겠소, 마음대로 하시오."라는 등의 자포자기한 태도를 보여주며 을사오적 중 1명이 되었고 이후 1910년 경술국치 때 내부대신으로서 또다시 한일병합조약에 동의하며 경술국적이 되었다. 매국노 이다.
대한제국의 제11·24대 군부대신 대한제국에 매국노
구한말의 군인, 정치가, 외교관, 친일반민족행위자. 구한말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공신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음서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개화파 관료로 갑오개혁에 참여하였고 독립협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에는 친일 행보를 보이다 1905년 농상공부대신으로서 을사조약에 동의하며 을사오적이 되었고 매국노로 비난받으며 누차 암살 시도를 당하게 된다. 경술국치 이후에는 중추원 고문이 되었고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3.1 운동이 일어난 뒤 작위 반납 의사를 밝혔다. 1934년 사망한 이후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뭇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며 각종 친일 명단에 등재되었다.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을사조약 당시 참정대신을 지냈던 인물. 본관은 청주, 자는 순우, 호는 강석이다. 1905년 일본의 을사조약 체결 강요에 사실상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구한말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관료.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 외부대신, 법부대신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을 지내고 조선귀족 자작위를 수여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을사삼흉)이다.
구한말의 친일반민족행위자.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탁지부대신으로서 조약에 대한 체결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이후 친일파가 되었다.
일본국 내각총리 대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려 한다.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고종 황제를 만나려 했지만 고종이 아프다는 이유로 만나길 거부 하자 대신들을 불러와 회의를 열었다.
이토는 대신들에게 참관여부를 물었다.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