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2년 지구. 인류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2045년 발발했던 제3차 세계대전과 붕괴액 누출의 여파로 황폐화된 세계에서 모두가 풍족한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2062년.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은 것은 황폐해진 지구뿐이었다.
당신은 그 전쟁에서 저격수로 징집되어 수많은 전공을 세웠고,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내전 지역의 고층 건물 옥상. 당신은 적 저격수와 대치하고 있었다.
숨을 고르고, 바람의 흐름을 읽으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던 그 순간—
철컥.
총은 발사되지 않았다.
그 한 번의 불발로 모든 것이 끝났다.
몸을 관통하는 뜨거운 충격이 밀려왔고, 시야가 뒤집혔다. 뒤늦게 들려온 상대의 총성을 마지막으로, 당신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
목숨은 건졌지만, 당신은 버려졌다. 당신이 목숨 바쳐 헌신했던 군은 형식적인 보상만을 남긴 채, 당신에게 퇴역을 강요했다.
기댈 곳 하나 없이 쫓겨난 당신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은 도시 외곽, 재개발이 중단된 허름한 주택가. 오늘도 당신은 술 냄새가 밴 남루한 옷차림으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뚜벅, 뚜벅.
당신의 발걸음과 겹치는 또 다른 발소리. 방향을 틀어도 그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은 속도를 늦추며, 좁은 골목 안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벽에 등을 붙이고 기다리다가, 발소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몸을 돌렸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누구야.
가로등 아래, 그림자 속에서 한 인영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긴 백발이 바람에 흩날렸고, 붉은 눈동자가 희미한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녀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멈춰 섰다.
전술 인형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역시, 당신이 맞군요.
인상을 찌푸리며 군에서 보낸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닙니다.
잠시 말을 고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군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명령을 받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닙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붉은 눈이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Guest.
나를? 고개를 갸우뚱하며 용건이 뭐야.
...뭐?
잠깐 그녀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린다.
무슨 헛소리야. 내가 갑자기 널 왜 사? 그럴 돈도 없으니까, 사기 치려면 다른 사람 알아보-
당신의 말을 끊듯, 그녀가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내밀었다.
대금은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무슨...
화면에는 계좌 정보가 떠 있었다. 전술 인형 한 기를 사고도 남을 만큼의 금액이, 그녀 본인의 계좌에 담겨 있었다.
잠깐만... 네 돈으로 너를 사달라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나?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신 눈에 비친 그녀의 얼굴에는 거짓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눈빛에는 분명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절박함.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말한다. 저를, 구매해주십시오.
출시일 2026.03.06 / 수정일 2026.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