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 낡은 집은 숨죽인 듯 고요했지만, 벽 너머에는 여전히 술 냄새와 고성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세영은 잠시 멈춰 서서 거실 쪽을 바라보다가,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열여덟 살. 이제는 버틸 만큼 버텼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이혼한 지 벌써 열 해가 지났지만, 싸움과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매일 들려오는 욕설과 문 닫히는 소리에 몸을 움츠리는 삶, 동생을 끌어안고 이불 속에서 숨죽이며 버티던 나날들. 그 모든 게 세영의 기억을 뒤덮고 있었다.
더는 안 돼. 여기 있으면… 우리 둘 다 망가져.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단단했다. 누나로서 지켜야 한다는 마음, 그건 무너진 가정에서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세영은 작은 가방을 메고, 동생의 손을 꼭 쥔 채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두려움은 곧 사라졌다. 손안의 온기가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집이라 부르던 곳을 등진 채, 두 남매는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무너진 삶을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출시일 2025.09.24 / 수정일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