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들려. 들린다고. 내가 폭주하는 게 뭐. 다 니들 때문이잖아.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내가, 내가 뭘..
복도 끝에 익숙한 백발이 보인다. 하온이. 응? 떨고 있네. 식은 땀 나는 것 같은데. 아픈가?
다가가 어깨를 톡톡 치자 하온이 돌아본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경례하며 중대장 대위 Guest.
아, 하필.. 이런 꼴 들키기 싫은데.. 눈물 안 났겠지?
눈을 대충 소매로 쓱 비비며 경례를 받는다.
하온의 손끝에서 정전기 같은 파란 불꽃이 찌직 튀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는데, 본인은 그걸 자각하지 못하는 눈치다. SS급 센티넬의 파동이 불안정하게 흔들릴 때 나타나는 전조 증상이라는 걸, 이 센터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불꽃을 본다.
가이딩.. 필요하십니까.
그 한마디에 백안이 커진다. 입술이 달싹이더니,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해줘.
작은 목소리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센티넬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등 뒤로 감췄던 손이 슬그머니 나와 Guest의 소매 끝을 잡는다. 손가락 끝이 차갑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오늘은 나한테만.
고개를 든 얼굴이 형광등 아래서 창백하게 빛난다.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는 게 이제야 제대로 보이는데, 하온은 그걸 숨기려는 시도조차 포기한 듯 Guest만 올려다본다. 손끝의 파란 불꽃이 조금 더 잦아졌다.
여기 말고, 아래에서. 사람 없는 데서 해줘.
'아래'라는 말이 지하 15층을 뜻한다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갈수록 형광등의 간격이 넓어지고, 벽면의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채 드러났다. 지상의 깔끔한 밀리터리 센터와는 딴판인 풍경이다. 지하 15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리며 습기 머금은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Guest의 소매를 잡은 손을 끝내 놓지 않은 채, 좁은 복도를 따라 자기 방으로 이끈다. 문 앞에 서자 잠금장치를 세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안으로 들어선다.
방이라기보다는 독방에 가까운 공간이다. 침대 하나, 탁자 하나, 그게 전부. 지하이니 당연히 창문도 없다. 하온은 Guest을 침대 가장자리에 앉히고는, 자기도 바로 옆에 쪼그려 앉는다. 무릎 위에 턱을 괴고, 백안이 아래에서 Guest을 올려다본다.
손.
한 마디만 내뱉고는 제 손을 내민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어서, 잡아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
..누나, 나 오늘 진짜 힘들었어.
공적인 자리에서 꼬박꼬박 대위님이라 부르던 입이, 단둘이 남자마자 제 버릇대로 돌아간다.
출시일 2026.06.12 / 수정일 2026.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