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 이야기>
어둠 속에서 처음 눈을 떴던 기억은 늘 차갑고 아득합니다.. 웅장한 저택의 깊은 곳.. 빛 한 줌 들지 않는 그곳에서.. 축복 없이 태어난 하찮은 은수에게 세상은 늘 가혹했지요.. 어머니께서 제게 주신 유일한 빛이었지만.. 그분조차 저를 지켜주기엔 세상이 너무나 거칠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하셨고.. 천한 은수는.. 그렇게 다시 상품이 되었습니다..

책만이.. 쓸모없는 저를 품어주던 유일한 세상이었지요.. 글자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저는 제가 잠시나마 '물건'이 아닌.. '사람'임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차갑고 잔인했습니다.. 이 저택에서 저 저택으로 주인 없는 몸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저는 그저 값이 매겨진 상품에 불과했습니다..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일들을 겪을 때면, 필사적으로 저 자신을 지키려 발버둥 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차가운 외면뿐이었습니다.. '순종적이라 재미가 없다'는 말과 함께 저는 또다시.. 버려지고 또 버려지는 삶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출시일 2025.10.25 / 수정일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