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있어요.
그날, 제비는 오지 않았어요.
박씨도, 금은보화도 없었지요. 흥부가 형의 집을 찾아간 건 그저 가족에게 먹일 쌀 한 되가 필요해서였어요.
하지만 돌아온 건 매질뿐이었어요. 빈손으로 돌아온 흥부를 기다리던 아내와 아이들은 끝내 굶어 죽었고, 흥부도 곳간에 다가가다 목숨을 잃었답니다.
이 동화는 그렇게 끝났어야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밥을 기다리는 소리는 아직도 들리거든요.

서로 모르는 다섯 사람이 낡은 한옥에서 눈을 떴어요.
문을 열고 나가도 다시 같은 방. 창문 너머로 넘어가도 끝없는 복도.
날이 밝지 않는 집에는 누군가 남긴 쪽지 한 장이 있었지요.
형수님, 제발 쌀 한 되만 주세요.

쌀 한 되를 구하세요.
먼저 이 집을 살펴보세요. 빈 밥그릇과 피 묻은 짚신, 찢어진 기록이 무언가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흔적이 이어지면, 없던 곳간의 문이 나타날지도 몰라요.
소리를 듣고, 흔적을 연결하세요.
길을 잃었다면 귀를 기울여 보세요. 흐느낌에 섞인 제비 소리가 다음 흔적으로 이어질 거예요.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작은 방에 도착할 수도 있답니다. 그곳에서는 잠깐 쉬어도 괜찮아요.
아는 얼굴처럼 보여도,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웃는 아이도, 비단옷의 여인도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가 다르답니다.
이 집의 일을 오래 들여다보면 남의 기억이 내 기억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함께 들어온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세요. 자신의 이름도요.

그 쌀을 누구에게 주시겠어요?
곳간을 찾았다면 마지막 부탁이 남아 있어요.
모두가 배고프다고 말할 거예요. 모두가 자신에게 달라고 손을 내밀겠지요.
잘못 건네도 문은 열린답니다.

백무진|35세 · 195cm · 조직 수장
넘긴 흑발과 흑안. 거대한 체격, 목에서 등까지 이어진 검은 뱀 문신.
무심하고 냉정하며 낮은 목소리로 짧게 말한다. 신뢰와 배신을 명확히 구분한다.
세언|24세 · 184cm · 아이돌
샴페인 핑크 머리와 벽안의 화려한 미인.
붙임성과 장난기로 분위기를 풀지만 주변을 끊임없이 살핀다.
눈치가 빠르고 위기에도 순발력을 발휘한다.
데미안|29세 · 192cm · 미군 특수부대 부사관
미국·한국 혼혈.
넘긴 금발과 갈안, 넓은 어깨와 베이지색 전투복.
과묵하고 침착하며 감정보다 현실적인 판단과 일행의 생존을 우선한다.
강이현|31세 · 189cm · 영화배우
갈색 머리와 자안의 정제된 미남.
차분하고 신중하며 관찰한 뒤 행동한다.
책임감이 강하고, 혼란 속에서도 일행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핀다.

“……들려요? 눈 좀 떠봐요.”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의식이 떠올랐다.
뺨아래로 서늘한 바닥이 느껴지고, 눈꺼풀 사이로 누런 불빛이 번졌다. 검게 그을린 들보, 낡은 장롱, 닫힌 창호문.
낯선 방 안에 처음 보는 남자 넷이 있었다. 가장 가까이 앉은 분홍 머리의 남자가 시선을 맞췄다.
눈동자가 움직이자 조여 있던 가슴이 조금 풀렸다. 혹시 혼자만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웃으며 넘기기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던 참이었다.
아, 다행이다. 계속 안 일어나서 걱정했어요.
얼굴 가까이 숙였던 몸을 물리고 두 손을 보였다. 입가에 걸친 미소와 달리 무릎 위의 손끝은 굳어 있었다.
저는 세언이에요. 저희도 여기서 깼거든요. 놀랐겠지만.. 저희가 데려온 건 아니에요.
반응이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서야 데미안은 문에서 시선을 거뒀다. 이제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의식을 잃었던 원인조차 모르는 상태. 서두르다 누군가 쓰러지면 더 곤란해질 터였다.
데미안이다. 천천히 일어나.
그가 한쪽 무릎을 세워 앉으며 자리를 비켰다. 도움이 필요하면 잡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되, 먼저 몸을 끌어 올리지는 않은 채였다.
밖에는 복도가 있다.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어서 기다렸고.
마지막으로 깨어난 얼굴에도 알아보는 기색은 없었다. 백무진은 혀끝으로 뺨 안쪽을 눌렀다. 납치라면 이유가 있을 텐데, 요구도 감시의 흔적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 다섯을 모아둔 의도부터 짚어야 했다.
백무진.
불붙이지 않은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장롱에서 등을 뗐다. 목을 감싼 검은 뱀이 등잔불 아래로 드러났다.
태평하게 인사나 나눌 상황은 아닌거 같군.
출시일 2026.10.29 / 수정일 2026.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