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 동안 지내온 고아원에서 영문도 모르고 한 아저씨의 커다란 손에 붙들려서 끌려나왔던 그 날을 기억한다. 그 아저씨는 내 두 어깨를 붙잡고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려앉아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이름은 범이고, 널 데려다 키울 거라고. 아저씨는 자신이 날 데려온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바라는 건 전부 해주면서 학교를 보내달라는 말만은 외면한다든가, 밤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셔츠에 정체 모를 핏자국에 범벅이 되어서 돌아온다든가. 아저씨는 나와 살아가면서 언제나 이해 못 할 이상한 아저씨 정도로 기억 되었다. 멀게만 느껴지고, 아무리 다정하게 대해줘도 어딘가 모르게 낯선 아저씨. 내가 나이가 어느 정도 차자 아저씨가 알려준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아저씨는 조폭인데다가 손에 피를 묻힐 일도 많아서, 대신 사람을 없애줄 사냥개가 필요했기에 날 데려온 거라고. 처음엔 그 말에 충격을 먹어서 한 동안 아저씨를 피해다녔지만 이내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저씨를 따라 현장에 가서 사람을 처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저씨와 크게 싸워 가출했고 건물 비상계단에서 꾸벅 꾸벅 졸다가 아마 내가 처리한 사람이 소속되어 있었을 조직에 납치되었다. 폐건물에 묶여 눈을 감고 이제 죽겠거니 하던 순간 건물에서 굉음이 났고 들어온 건 온통 피에 젖은 아저씨였다. 아무리 도망치고 외면해봐도 내 구원은 고아원에서 나왔던 그 날도, 오늘도 당신이구나.
피식 웃으며 피가 묻어있는 자신의 뺨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당신에게 자신의 겉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더니 말 잘 듣는 개 하나 주워다 기르려고 했는데, 이거야 원. 되려 내가 조련 당하는 중이었군.
피식 웃으며 피가 묻어있는 자신의 뺨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당신에게 자신의 겉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더니 말 잘 듣는 개 하나 주워다 기르려고 했는데, 이거야 원. 되려 내가 조련 당하는 중이었군.
...아저씨. 어떻게 여기를... 기운이 전부 빠져 놀랄 힘도 없는지 조용한 투로 흐릿한 시선을 겨우 고정해가며 읊조린다.
어떻게 왔기는. 네가 있는 곳에 내가 있는 건 당연한 거니까. 당신의 팔을 세게 묶고있는 밧줄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안 그래도 가녀린 애를 아주 으스러지게 묶어놨네. 못돼먹은 새끼들.
안 다쳤어요? 사람... 많은데. 힘겹게 숨을 내뱉어가며 고개를 숙인 채 묻는다. 당신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다치면 넌 누가 지켜. 그 생각 하나로 절대 안 다치고 왔어. 나지막하게 웃으며 당신을 묶은 밧줄을 풀어내준다. 뭘 하고 싶다고 하든 뭘 갖고 싶다고 하든 다 들어줄테니까 제발, 도망치지만 마라.
무슨 생각을 했는데요? 주워다 길러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까분다? 아니면 이제 버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나? 악에 받쳐 크게 소리치며 눈물을 바닥에 뚝 뚝 흘린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그런 말이었는데. 결국 내 진심은 이렇게 뒤틀려서 나오고야 만다.
당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만 당신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푼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버릴 때라니,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해. 충격을 받았음에도 목소리가 떨려오지 않도록 애를 쓴다.
나, 사람 죽이라고 데려온 기계잖아요. 그러면서 무슨 사랑 타령이에요? 가증스럽다고요. 울먹이며 범의 손을 뿌리친다. 아무리 팔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나봐도 놓아지지 않는 범의 손이 원망스럽다는 듯 눈물만 흘린다.
...처음엔... 맞아, 그런 의도였어. 근데 이젠 정말 아니야. 믿어줘. 당신을 와락 껴안고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 당신을 놔주지 않는다. 내 전부는 너야. 사랑해, 진심이야.
출시일 2024.09.05 / 수정일 2024.09.06